‘2030 고학력 백수’ 3만5000명…손 내민 신앙공동체

입력 2025-11-19 16:04
게티이미지뱅크

4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전현진(가명·28)씨는 매년 더 좁아지는 채용 문턱을 실감하고 있다. 2022년부터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시험장에 들어서고 있지만, 해마다 전형 방식이 달라지고 필기 합격선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무엇보다 그는 채용 규모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어 취업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전씨는 목표하는 금융권 기업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채용 인원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고 했다. 한때 300~400명을 채용한 A은행은 올해 100여명 수준으로 모집 규모를 줄였고, A은행과 규모가 비슷한 B은행 역시 100명 아래로 대폭 축소했다. 전씨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학력이나 경력도 밀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시험장에 가보면 스펙이 더 좋은 지원자들이 많다. 3년째 같은 자리에 머무는 느낌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은행권은 이미 디지털 전환이 진행돼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들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시대에 취업 기회 자체가 줄고 있는 상황이 가장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씨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고학력 장기 실업자’로 분류된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비경제활동 및 비임금근로 부가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이상 학력을 가진 2030세대 중 6개월 이상 일을 찾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지난달 기준 3만5000명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9월(3만6000여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다.

연합뉴스

청년 일자리 문제가 깊어지는 가운데, 교회와 기독 대학들이 이를 교회의 사회적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청년들의 취업을 부축하고 있다.

서울 오륜교회(주경훈 목사)는 10여년째 크리스천 취업스쿨(CRS)을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 인사(HR) 부서에서 일하는 집사들이 멘토로 참여해 2박3일 합숙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소개서 작성과 모의 면접을 지도한다.

급변하는 취업 환경에 취업스쿨 커리큘럼도 달라지고 있다. 취업스쿨 멘토인 오륜교회 C집사는 “AI 면접과 자동화 채용이 표준이 된 만큼 청년들이 AI 활용 역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강의를 보강했다”며 “청년들이 각자의 경험을 AI 시대에서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1년 CCC(한국대학생선교회)와 협력해 온라인 취업스쿨을 연 적이 있다”며 “취업난이 깊어지는 만큼 작은 교회나 지방 캠퍼스 청년들을 위한 온라인 취업스쿨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륜교회 크리스천 취업스쿨 멘토 집사들과 멘티 청년들이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에서 모의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오륜교회 제공

주중 유휴 공간을 내어주는 식으로 청년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교회도 있다. 서울 충현교회(한규삼 목사)는 서울 강남구와 2023년 ‘청년 점프업 프로젝트 협약’을 체결, 강남구에서 청년 취업·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할 80여평 규모의 교육관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아카데미는 취업 준비반, 자격증반, 창업반으로 나뉘어 AI 시대에 맞춘 핵심기술 교육과 진로 탐색 시간 등 청년들이 꿈을 찾고 직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달 기준 이 프로그램 통해 청년 30명이 취업과 창업에 성공했고, 61명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기독 대학인 부산 고신대(총장 이정기)는 지난 9월 일자리 페스티벌을 열고 기업과 단체들을 초청해 청년 대상 현장 면접 및 채용 상담을 진행했다. 고신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가 준비한 행사엔 고신대 재학생과 졸업생뿐만 아니라 지역 청년까지 총 400여명이 참여했다. 대학은 지역 청년들과 2016년부터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취업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다.

미래학자인 최윤식 아시아미래연구소 소장은 “요즘 청년들의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불안과 취업의 불확실성”이라며 AI 시대 청년 일자리 문제를 교회의 시대적 사명으로 진단했다. 그는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일자리는 주니어급, 즉 젊은 세대의 일자리”라며 “교회는 이 문제를 비상상황으로 인식하고 현실적 도움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도 “교회가 가정 사역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일터 사역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 시장이 좁아지고 전통적인 직업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교회는 청년들에게 정서적 지지와 함께 일터를 신앙의 자리로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성 김동규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