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뒤통수 맞아 화가 나는데, AI한테 욕하면 알아듣나요?”
크래프톤 산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렐루게임즈의 신작 ‘미메시스(MIMESIS)’는 공포·긴장·불신이라는 생존 게임의 감정을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버무린 독특한 경험을 준다. 얼리 액세스 버전임에도 플레이어의 행동과 목소리를 정교하게 모방하는 AI ‘미메시스’의 완성도가 인상적이다. 게임이 목표로 삼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AI”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됐는지 직접 플레이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미메시스는 AI가 게임 플레이 경험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작품이다. 불안·탐욕·의심이 맞물린 생존 구조 속에서 인간을 정교하게 모방하는 AI는 예상치 못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AI가 인간을 완벽히 흉내 낸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개발 의도를 게임 플레이 전반에서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게임의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플레이어는 트램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자원을 모으고, 오염 지역에서 생존하면서 목표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협동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든 동료 중 한 명이 ‘미메시스’일 수 있다는 불안이 게임 전체에 깔려 있다. 기본적으로는 협력 게임이지만, 매 순간 의심과 심리전이 공기처럼 떠다닌다.
직접 플레이하며 가장 눈에 띈 건 AI의 정교함이다. 기존 비(非)플레이어 캐릭터(NPC)가 프로그래밍된 패턴대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의 AI는 실제 인간 플레이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신경망이 직접 이동 키를 조작하며 행동한다. 현존 상용 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실시간 딥러닝 기반 제어 방식이다. 실제로 플레이어처럼 움직이고, 플레이어처럼 말을 걸며, 때로는 플레이어보다 더 영리하게 심리전을 걸어온다. 시연 중 만난 AI는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갑자기 뒤에서 공격해 왔고, 때론 순간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당황하는 행동’까지 보여줬다.
스팀 내 유저 리뷰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이어진다. “친구인지 미메시스인지 헷갈릴 땐 일단 때리고 본다” “도와준다길래 따라갔다가 뒤통수 맞았다” “AI에게 화도 못 내고 웃음만 나왔다” 같은 반응은 단순 공포를 넘어선 반전 체험을 잘 보여준다. AI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사람을 모방하기 때문에, 협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를 의심하게 되는 ‘심리적 공포’가 게임의 핵심 경험임을 실감했다.
아트 스타일은 개발진이 밝힌 대로 ‘진지한 병맛’ 미학을 표방한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기묘한 유머가 적절히 섞여 있어, 심리적 긴장감이 웃음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공포와 웃음이 교차하는 리듬은 의도한 설계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투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오염 지역에서의 오염도 관리가 중요하지만, 실제 위협은 언제 어디서든 돌진해 오는 적들이다. 대처가 조금만 늦어도 한 번에 죽을 수 있어 은폐·엄폐와 경로 선택이 중요하다. 최고 등급 무기를 들고 있어도 방심하면 죽고 빈손이어도 영리하게 움직이면 살아남을 수 있다. 단순 화력보다 상황 판단과 경로 선택을 중시하는 설계가 돋보인다.
게임에는 별도의 튜토리얼이 없다. 하지만 방향키 조작과 아이템 사용법이 직관적이어서 적응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게임 목적도 명확히 제시돼 처음 진입하는 유저도 빠르게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얼리 액세스 단계라 콘텐츠의 폭은 아직 넓지 않다. 인스턴스 던전이나 아이템 구성이 풍성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개발사가 밝힌 핵심 키워드인 ‘공포와 생존, 그리고 의심 속 협동’은 명확하게 구현돼 있다. 렐루게임즈는 이전 테스트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를 한층 정교하게 다듬었다고 했다. 이번 빌드에서 그 방향성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