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이 ‘소년’이라 부른 백발 의사가 전한 행복

입력 2025-11-19 13:35 수정 2025-11-19 15:30
이종국 전 국립공주병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시인은 환갑을 넘긴 정신과 전문의에게 ‘소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육신의 소년이 아니라 마음의 소년, 정신의 소년, 그가 가는 길 거침 없어라.” 지난 7월 국립공주병원 대강당, 이종국(63) 병원장 퇴임식 단상에 오른 나태주 시인은 떠나는 원장을 위해 지은 축시 ‘내일도 여전히 소년이시라’를 낭송하며 그를 배웅했다.

분당구미교회 장로인 이 전 원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자리에서 그 시구처럼 소년 같은 맑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1년 전문의가 된 그는 지난 35년간 홍성의료원, 용인정신병원, 국립공주병원 등 공공의료 최전선을 지켜왔다.

나태주 시인(왼쪽)이 지난 7월 국립공주병원에서 열린 이종국(오른쪽) 원장 퇴임식에서 그를 위해 지은 축시 ‘내일도 여전히 소년이시라’를 낭송하고 있다. 이 전 원장 제공

어린 시절 이 장로를 만든 건 아버지였다. 가난으로 중학교까지 어렵게 졸업한 이 장로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쌀가게를 하면서도 당시 이익을 위해 저울 눈금을 속이는 관행을 거부했다. 당시 상인들 사이에서는 쌀에 다른 것을 섞거나 양을 줄여 파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이 장로는 “아버지는 ‘남을 속이면 돈은 벌지 몰라도, 내 양심이 안다’고 말하면서 정직을 지키셨다”며 “세상의 성공 방식이 아닌 ‘정직’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기에, 남들이 기피하던 정신과와 공공의료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장로의 아버지는 부인과 아들을 주일에 교회에 보내면서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쌀가게를 지켰다. 은퇴할 나이가 될쯤 교회에 가겠다고 결심하고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의대생 시절 수많은 전공 중 정신과를 택한 데에는 신앙적 고민이 깊게 깔려 있었다. 그는 “성경 속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고,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키는 ‘치유’가 핵심이었다”며 “오늘날의 의사로서 예수님의 삶을 가장 닮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보는 정신과도 그 길이 될 수 있겠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종국(오른쪽) 전 원장이 지난 8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진행된 분당구미교회 해외의료선교 활동 중 현지 주민을 진료하고 있다. 이 전 원장 제공


이 장로가 35년간 공공의료 현장을 떠나지 못한 이유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약물로 환자의 증상을 잡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살아갈 삶의 터전까지 처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토양’의 중요성을 휠체어에 비유했다. 그는 “다리가 절단되어 걷기 힘든 이에게 무작정 걸으라고 훈련만 시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걷는 훈련이 아니라, 휠체어가 지날 수 있는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라며 “정신질환자도 마찬가지다. 병원 밖 사회가 그들을 받아줄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치료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교회가 경쟁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와 달리 누구나 평등하게 위로받는 ‘치유의 피난처’가 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세상은 능력과 성과로 사람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지만, 교회는 존재 그 자체로 용납받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바리새인이 아닌 어부와 세리, 병든 자 곁에 머무셨던 것처럼 교회 역시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무대가 되기보다, 실패하고 상처 입은 이들이 깃들 수 있는 품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회 내에 여전히 만연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기도 부족’이나 ‘믿음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선이 성도들을 병원 대신 고립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그는 “다리가 부러지면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는데, 뇌 기능에 문제가 생겨 마음이 아픈 것은 왜 신앙의 척도로만 보는지 모르겠다”며 “눈이 나쁘면 안경을 써서 세상을 선명하게 보듯, 뇌의 호르몬 조절이 안 되면 약의 도움을 받아 마음을 회복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했다.

8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진행된 분당구미교회 해외의료선교 활동 기념사진. 이 전 원장 제공

은퇴 후 녹색병원에서 주 3일 진료를 하면서 정신과 전문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인생을 야구에 비유했다. 이 장로는 “1회부터 9회까지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당장 꼴찌 팀 같아도 우승 팀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점짜리 답안지가 아니어도 적당한 점수만 받으면 시험에 통과한다”며 “시력이 나빠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을 받아들이듯, 내 삶의 결핍과 한계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비로소 평안이 온다”고 말했다.

그에게 인생 2막의 계획에 대해 묻자, 거창한 목표 대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성공한 의사보다는 필요한 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과 내 양심은 알기에, 앞으로도 묵묵히 아픈 이들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