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1조 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한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향해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라며 국빈급 예우를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2018년 벌어진 언론인 살해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했지만 트럼프는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변호하며 “매우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빈 살만은 이날 백악관에서 양자 회담을 열었다. 빈 살만은 미국에 1조 달러 투자 계획을 밝히며 “미국의 미래를 믿는다”고 말했다. 1조 달러는 사우디의 전체 국부펀드 규모와 맞먹는다.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기쁘게 하려고 가짜 기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며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5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6000억 달러 규모 투자 합의를 끌어냈는데 사우디가 예정된 금액에서 40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트럼프는 빈 살만의 발언에 “당신과 친구가 된 것은 큰 영광”이라며 “이제 1조 달러에 이르는 투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빈 살만은 2018년 3월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찾았다. 트럼프는 빈 살만을 “인권 등에서 놀라운 분”이라며 극진하게 예우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다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 소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에 빈 살만이 있다는 의혹을 대신 반박했다.
트럼프는 한 기자가 빈 살만에게 “미 정보 당국은 당신이 언론인의 잔혹한 살인을 지시했다고 결론지었다”고 묻자 격앙된 목소리로 끼어들며 “그(빈 살만)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질문으로 우리 손님을 난처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카슈끄지)은 매우 논란이 큰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며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라고 했다. 앞서 2021년 중앙정보국(CIA)은 빈 살만 왕세자를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판단한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트럼프는 관련 질문을 한 ABC 방송 기자에게 “끔찍한 기자다. ABC 방송은 가짜 뉴스이기 때문에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격노하기도 했다.
빈 살만은 해당 암살에 대해 “매우 고통스러운 사건이었고 큰 실수였다”며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적절한 조사를 진행했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또 9.11테러에 사우디 국적자가 개입된 것에 대해서도 “그 사건의 주된 목적은 미국과 사우디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며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오사마 빈 라덴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한 ‘아브라함 협정’에 사우디가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빈 살만은 “우리는 모든 나라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믿고 ‘아브라함 협정’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과 관련해 “‘두 국가 해법’을 위한 명확한 길이 확보돼야 한다“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해법으로 이스라엘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일가가 사우디에서 부동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이해 상충 논란이 을 수 있다는 질문에는 “가족 사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은 괜찮다. 그들은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는 백악관에 도착한 빈 살만을 손을 벌려 환영한 뒤, 백악관 사우스론(남쪽 잔디밭)을 함께 둘러보기도 했다. 빈 살만 방문에 맞춰 F-35 등 여러 대의 전투기가 백악관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했다. 미국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에도 F-35 전투기를 사우디에 판매할 계획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