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의 2차 사업 경쟁 전초전이 시작됐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이후 ESS의 ‘안전성’ 문제가 크게 부각하면서 이번 입찰에선 입찰가보다 안전성 등 비가격 요소가 대폭 강화된 점이 핵심 변화로 꼽힌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거래소는 전날 광주 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6년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자설명회’ 열고 평가 기준과 추진 방향을 설명했다. 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은 지역의 전력 계통 안정화를 위해 대규모 ESS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차 사업의 공급 규모는 총 540메가와트(㎿)로, 사업비는 약 1조원에 달한다. 공급 시기는 2027년 12월로 예정됐다.
2차 평가는 가격과 비가격 평가 비중이 60대 40에서 50대 50으로 조정해 ‘가격 외 요소’의 영향력을 키운 것이 특징이다. 1차 때는 입찰가 낮추기 경쟁이 벌어졌다면, 2차에서는 ‘가격 외 요소’를 좀 더 따져보겠다는 방침으로 해석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평가단에 안전성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포함하도록 한 점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현장 질의에서 “화재 안전 관련 전문가 풀을 별도로 구성해 평가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정자원 화재 사태를 계기로 화재에 대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비가격 평가 항목도 조정됐다. 화재·설비 안전성 점수는 기존 22점에서 25점으로 늘었고, 계통 연계(출력제어·계통 안정화 기여도) 점수도 24점에서 25점으로 상향됐다. 산업·경제 기여도 항목 역시 24점에서 25점으로 확대됐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배터리 3사의 경쟁 전략에도 미묘한 변화를 부를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국내 생산 기반과 화재 안전성이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선 1차 때는 국내 생산 체계를 갖춘 삼성SDI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2차를 앞두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각각 충북 오창과 서산에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체계 준비에 들어갔다. 생산 기반을 마련해 1차의 불리함을 상쇄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공급망에 대한 평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원계(NCA)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경쟁 구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부에선 발화 가능성과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LFP가 더 유리하지 않겠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다만 NCA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는 자체 열 확산 방지 및 화재 차단 기술을 적용했고, 전기안전공사와 사고 예방 매뉴얼을 구축해 안전성 배점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1차 사업 평가에서 입찰 가격이 높은 비중으로 반영됐다고 알려져 배터리 3사가 2차 사업에서는 어느 정도 유사한 가격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결국 국내 기여도, 기술력, 안전성 등 비가격 요소로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사업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는 내년 2월쯤 발표될 전망이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