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자사 업무 앱 설계 상 7일 연속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밝혀온 가운데, 실제로는 배송 기사들이 타인의 아이디를 이용해 장기간 새벽 배송을 이어온 정황이 드러났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와 과로사없는택배만들기 시민대행진 기획단은 18일 고 오승용씨 유족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제3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고인은 타인의 아이디로 쿠팡CLS 앱에 접속해 7일을 초과하는 야간배송 업무를 수행했다. 이는 쿠팡 측이 주장한 ‘7일 연속 로그인 제한’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국택배노조가 공개한 고인의 카카오톡 대화를 보면, 지난 9월 5일 택배 영업점 관계자가 “이번 달 다른 아이디 사용 없어?”라고 묻자, 고인은 “(지난달)7일 김** 319건, 한 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노조는 “이 대화는 대리점 내에서 타인 아이디를 활용한 배송이 일상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노조가 고인 사망 전 두 달간의 업무 카톡방을 분석한 결과, 쿠팡이 내세운 ‘격주 5일제’가 적용되지 않는 기사들이 다수였으며, 일부는 14일 연속 근무한 사례도 확인됐다.
노조는 “고인은 하루 평균 11시간 30분씩 야간 고정 철야 근무를 했는데, 과로사 기준에 맞춰 환산하면 주 83.4시간 초장시간 노동을 해온 것이 된다”며 “이는 주 60시간 이내로 제한한 사회적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고인이 근무했던 쿠팡 제주1캠프에서 택배기사들에게 분류작업(통소분)을 전가해왔다는 동료 기사들의 증언도 확보됐다.
이 역시 지난 1월 국회 노동위원회 청문회 이후 명문화된 ‘택배사는 분류작업을 책임지고, 배송기사는 배송만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반한다.
현재까지 노조 조사에 따르면 고인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30분까지 하루 평균 300개가 넘는 택배를 배송해 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사망 직전인 5일부터 7일까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하루만 쉬고 9일 업무에 복귀했으며, 다음 날 새벽 배송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앞선 조사에서는 고인이 택배 영업점 관계자에게 “27일 휴무될까요?”라고 묻자, 관리자가 “원하시는 대로 하시려면 다른곳으로 이직하셔야 될거 같네요”라고 답한 사실도 공개됐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이 비극의 뿌리에는 과로를 낳는 쿠팡의 노동시스템이 있다”며 “쿠팡은 무제한 노동을 방치한 과로 구조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과로사 방지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