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 흔한 정장 차림의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등장한 김혜경 여사는 머리에 둘러 어깨로 흘러내리는 흰색 ‘히잡’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이슬람 종교시설인 모스크를 방문하는 자리라 보다 더 엄격하게 상대국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통화에서 김 여사의 히잡 착용에 대해 “상대국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쓴 것이고, 일종의 배려”라며 “UAE는 히잡 착용을 강제하지 않는 개방적 이슬람 국가지만, 외교적 배려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히잡 착용을 두고 역대 정부에선 매번 논란이 됐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이 직계 가족 외의 남성 앞에서 자신의 신체를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복장이다. 서구권을 중심으로 히잡이 여성 억압의 도구라는 비판도 제기되는 이유다. 의상 자체가 메시지인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여성 억압 문화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란 지적과, 반대로 상대국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쓰는 게 옳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은 이슬람 종교 시설 방문 시 상대국 존중 차원에서 히잡을 착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5년 김 여사가 방문한 곳과 같은 그랜드 모스크에 방문하면서 히잡을 썼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이란 국빈 방문 당시엔 이란식 히잡인 ‘루싸리’를 모든 일정에 쓰고 다니기도 했다. 이슬람 율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시아파 국가인 이란을 존중한 것인데, 이는 한국 대통령이 순방의 모든 일정에서 히잡을 쓴 첫 사례였다. 당시 흰 루싸리를 쓴 박 전 대통령 모습에 정치권과 여성단체 등에선 첫 여성 대통령이 여성 억압의 도구를 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부인들도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다. 문재인정부에선 김정숙 여사가 2018년 UAE 그랜드 모스크를 방문하며 흰색 히잡을 착용해 다시 논란이 됐다. 이준석 당시 바른미래당 서울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박 전 대통령이 중동 방문할 때 히잡을 썼다고 여성 억압의 상징을 착용했다느니,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다느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이 조용한 걸 보니 히잡도 착한 히잡과 나쁜 히잡이 있는가 보다”고 지적했다. 당시 청와대는 이슬람 종교 시설에 방문하는 것이라 예의상 착용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윤석열정부에선 김건희 여사가 2023년 UAE 그랜드 모스크를 방문하며 검정색 ‘샤일라’를 썼다. 샤일라는 히잡 중에서도 걸프 지역(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쿠웨이트 등) 여성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어깨 위로 천을 자연스레 흘러 내리기보다 여러번 목에 두르는 ‘랩’ 형태가 많다. 다만 김건희 여사의 경우 샤일라 착용보다 순방에서 선보인 패션 아이템의 파격성이 화제를 더 모았다.
히잡 착용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2015년 사우디 방문 당시 히잡을 두르지 않고 바지를 입었다. 이에 대해 변호사로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오바마 여사가 사우디의 여성 인권 침해 문제를 복장으로 간접 비판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샤일라를 두르고 모스크에 방문하며 “서로 다른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