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로 7명이 숨진 참사의 원인을 두고, 사고 직전 진행된 ‘사전 취약화 작업’이 안전 매뉴얼과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작업 지점과 순서, 작업자 구성 등 핵심 절차가 계획서와 달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과 노동당국의 수사 핵심도 이 부분에 맞춰질 전망이다.
사고는 타워 발파 해체를 위한 사전 취약화 작업 중 발생했다. 취약화는 발파 시 구조물이 목표 방향으로 쓰러지도록 위험도를 조정하는 주요 단계로, 시공사 HJ중공업의 ‘안전관리계획서’에는 취약화 구간을 지상 1m와 12m, 총 두 곳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작업자들은 계획서에 없는 25m 지점에서 추가 취약화와 방호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낡아 못 쓰게 된 철재 타워는 이미 기둥 4개만 남은 상태였고, 63m 높이 구조물의 상부에서 다시 취약화 작업을 진행한 것은 구조 안정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사고수습본부도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6호기는 25m 취약화 작업이 위험해 시행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작업이 5호기에서는 반복된 이유와 경위는 향후 책임 규명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취약화 작업 순서도 의문이다. 동서발전 기술시방서는 “취약화는 최상층부터 진행하고, 상층 취약화가 끝나기 전에는 하층 주요 지지부 절단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사고 당시 5호기 작업이 이 원칙을 준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취약화의 범위와 강도 역시 살펴봐야 한다. 시공사 HJ중공업과 하도급사 코리아카코는 과거 서천화력발전소 발파 작업에서 건물이 넘어지지 않는 실패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례 때문에 울산 현장에서 취약화 강도가 계획보다 더 확대됐는지는 수사 대상이다.
현행 법·제도 사각지대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다. 울산 남구에 따르면 보일러 타워는 철재 구조물로 분류돼 건축물관리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본관 건물과 달리 지자체 해체 허가나 상주 감리 의무가 없어, 60m가 넘는 대형 구조물 해체가 제도적 관리 밖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인력 구성도 논란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사고 당시 작업자 중 정규직은 1명뿐”이라며 비숙련 인력 투입 문제를 언급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한 근로자는 플랜트 경험도 없는 일용직으로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술시방서에 명시된 ‘우수 기능공 투입’ 규정과 배치될 소지가 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취약화 작업의 적정성, 발주처·시공사·하도급사 간 책임 범위, 안전관리 이행 여부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