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유학생은 간첩”?…‘혐오 현수막’ 칼 빼든 정부

입력 2025-11-16 08:45 수정 2025-11-16 13:13
MBC 방송화면 캡처

이재명 대통령이 ‘혐오 현수막’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관계 부처가 관련 대책 마련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혐오·차별 표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제재가 어려웠던 터라 관계 부처가 관련 지침부터 정비하고 있다.

1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정당 현수막에 대한 민원이 온·오프라인으로 총 1만8016건 접수됐다. 서울과 경기에서 발생한 민원이 각각 26.5%(4782건), 26.3%(4744건)로 많은 편이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수막 위치가 부적절하다’ ‘내용이 아이들 보기에 민망하다’ ‘도로 교통상 위험하다’ 등의 신고가 안전신문고 등을 통해 접수됐다고 전했다.

행안부는 이달 안으로 정당 현수막에 인종차별 등 혐오 표현이 포함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사례를 정리해 각 지자체에 내려보낼 예정이다. 현재 어떤 문구가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표현인지 지자체가 판단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정당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지자체에 신고하거나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고도 장소의 제약 없이 설치할 수 있다.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자유롭게 설치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근거 없는 의혹을 확산하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이 내걸리면서 민원이 쏟아졌다. 특히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 혐오를 유발하는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게시되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극우 성향의 소수 원외 정당인 내일로미래로당은 ‘중국인 유학생은 100% 잠재적 간첩’ ‘중국인 무비자 입국은 관광이 아닌 점령?’ 등과 같은 문구를 내건 현수막을 지속해서 설치해 논란을 빚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길바닥에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도 정당 현수막이어서 철거를 못 한다”며 대책을 주문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정당 현수막이 옥외광고물법뿐 아니라 정당법에 따라 허용되고 있어 법률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옥외광고물법 제5조는 인종차별적 또는 성차별적 내용으로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는 광고물은 게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무엇이 혐오·차별 표현으로 볼 것인지 기준이 모호해 지자체가 철거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 현수막 내용을 규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