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할 일을 모두 AI가 대신하는 날이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을 겨루는 e스포츠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정훈 LCK 사무총장은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5 게임문화포럼’에서 “경기력이 인기에 미치는 영향은 본질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세계 최정상급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국 e스포츠는 앞으로도 높은 위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e스포츠 대회에서 유독 한국인이 두각을 나타낸다. 그 이유를 연구하려고 해외 관계자들이 한국에 와서 직접 배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에 따르면 올해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은 유튜브 기준 국내에서 120만명이 시청하며 라이브 방송 동시 시청자 수 역대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지난해 계엄령 당시의 MBC 뉴스였다. 그는 “SOOP, 치지직, 공동 중계(co-streamer) 등을 포함하면 150만~300만 명이 시청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인구의 약 5%가 같은 시간에 같은 콘텐츠를 시청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 플레이어 ‘페이커’ 이상혁의 글로벌 인기가 여느 스포츠 스타를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나라를 가도 페이커 선수는 10초 이상 그냥 걸어갈 수 없다. 사진·사인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페이커가 은퇴하면 리그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뒤에도 NBA에서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듯 LCK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최근 e스포츠 대회가 게임사가 주도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에 대해 “과거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는 OGN, 한국e스포츠협회 등이 주도했지만 이는 IP 개념이 희박하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e스포츠는 IP 홀더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과거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건 소리바다에서 음원을 불법 다운로드하던 시절이 좋았다는 말과 같다”고 비유했다.
이 사무총장은 “LCK는 국내 4대 스포츠(축구·야구·농구·배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한다”며 “전통 스포츠는 해외 시청률이 거의 없지만 LCK는 시청자의 60%가 해외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e스포츠 발전을 게임 산업 발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e스포츠는 게임에서 파생했고 게임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지만, 게임에 종속된 개념이 아니다. 게임은 ‘산업’이고 e스포츠는 ‘스포츠’다. 이 구분을 헷갈리는 것이 오히려 발전을 더디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게임의 인기가 유지돼야 e스포츠 환경도 좋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e스포츠는 고도의 방송 역량과 전문적인 리그 운영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덧붙였다.
강동훈 전 DRX 감독은 유망 선수 발굴 과정에 대해 “실력 테스트뿐 아니라 성격, 성향 등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케리아(류민석), 비디디(곽보성) 등을 발굴한 경험을 언급하며 “유망 선수를 추리고 온·오프라인 테스트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실력뿐 아니라 성실함, 오프라인 환경에서의 긴장감 극복 여부, 태도, 포지션별 미션 수행 능력과 피드백 역량 등을 다각적으로 살핀다”고 설명했다.
강 감독은 LCK에서 선수 데이터를 정량화해 활용한 사례를 소개하며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잘 관리하면 좋은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정교한 데이터 구축을 위해 대학 교수에게 직접 찾아가 연구한 적도 있다”며 “간혹 놓친 선수가 있다면 그 이유를 반성적으로 따져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빽빽한 일정 속에서 훈련과 대회를 병행하며 심리적·신체적 부담을 크게 겪는다고 설명했다. “성적에 따라 멘탈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인드 세팅과 건강 관리는 강팀이 되기 위한 핵심 요소”라며 “마우스 속도나 장비 선택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맞춰주면 경기력이 올라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체력·자기관리, 홈 트레이닝, 심리 치료, 단체 활동 등 복합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 감독은 e스포츠의 교육적 가능성도 언급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e스포츠다. 모두가 즐기고 누리는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포럼은 지스타 2025 현장에서 열렸으며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게임과학연구원·한국게임산업협회가 후원했다. 전날 행사에서는 ‘게임이 여는 새로운 가치’를 주제로 장애인 게임 접근성 개선 과제, AI 기반 접근성 혁신, 포용적 게임 디자인 등에 대한 강연이 진행됐다.
부산=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