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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 덕순이는 저희 동물복지센터의 똑순이에요. ‘손’ ‘엎드려’ 같은 기본 교육은 물론이고 배변 훈련도 어느 강아지보다 빠르게 마친 센터 모범견이죠. 그런데 실은 덕순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견이에요. 그런데도 인솔자의 의도를 읽고 얼마나 정확히 반응하는지 놀라울 정도예요. 가끔은 덕순이가 안 들린다는 걸 잊고 말을 걸 정도입니다.”
-서울시립 동물복지지원센터 김채연 주무관
지난달 21일 서울 동대문구의 서울시립 동물복지지원센터(동대문 센터). 인조 잔디가 깔린 20평 옥상 교육장으로 13㎏쯤 되는 황구 한 마리가 걸어왔습니다. ‘손’ ‘앉아’ ‘엎드려’ 구령에 맞춰 정확히 움직인 뒤 익숙하게 간식을 받아먹는 황구.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눈앞의 간식을 참아야 하는 ‘기다려’ 교육 때에는 간식을 향해 달려드는 옆 견공 앞에 슬쩍 앞발을 내밀었습니다. 인솔자를 대신해 철없는 친구를 조용히 자제시킨 거죠. 의젓한데다 눈치까지 빠른 이 녀석. 센터 모범견으로 통하는 2살 황구 덕순이였습니다.
교육 일정을 마치자 인솔자 무릎에 올라타더니 입을 맞추는 덕순이. 영리함에 애교까지 갖췄으니 당장 반려견 생활을 시작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덕순이는 장장 20개월째 입양 문의가 없어 동대문 센터의 최장기 투숙견이라는 안타까운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슬픈 속사정이 있었는데요. 덕순이는 소리를 전혀 못 듣는 청각 장애견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견 입양을 꺼리는 국내 현실에서 소형견도 아닌 믹스견이 입양처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근데요. 덕순이의 교육 장면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인데요. 만약 청각장애 때문에 돌봄이 어려울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쓸데 없는 걱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덕순이는 청각 장애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인솔자 말을 잘 알아듣는 듯했습니다. 덕순이는 대체 어떻게 인솔자가 요구하는 대로 정확히 움직이는 걸까요. 김 주무관은 “덕순이는 인솔자의 수신호를 읽을 수 있다. 손을 주시하며 움직인다”고 말했습니다. 수신호가 사실상 구령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김 주무관은 “의젓한 성견으로 성장한 덕순이가 입소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입양을 못 가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누구보다 영리하고 소통이 잘되는 덕순이가 반려견으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에서 14㎏ 성견으로…장기 투숙견 덕순이
사연은 지난해 2월 시작됩니다. 아직 젖니도 빠지지 않은 작은 강아지 덕순이가 동대문 센터에 입소합니다. 덕순이가 처음 발견된 곳은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 인근. 추운 겨울 길거리를 떠돌던 덕순이를 시민이 발견해 신고했고, 이후 덕순이는 서울시의 위탁 시보호소로 이관됐습니다. 연간 4000여 마리 유기동물이 쏟아져 들어와 상당수가 개체수 조절을 위해 안락사 되는 곳이죠. 아마도 덕순이 역시 그런 길을 갔을 겁니다. 당시 보호소의 입소동물 공고에는 차가운 철창 구석에 웅크린 채 안락사 순번을 기다리던 어린 덕순이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덕순이가 살아난 건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마침 동대문 센터에 빈 견사가 생겼다는 소식이 보호소로 전달됐고, 덕순이는 안락사 직전 다시 센터로 이송될 수 있었습니다. 동대문 센터는 안락사 없는 시설이에요. 규모까지 작아서 빈 자리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뜻밖에 입양이 활발하게 이뤄져서 종종 빈 자리가 만들어집니다. 30여 마리를 수용하는 규모인데 연간 100마리 넘게 입양을 보낸다고 합니다. 센터는 이를 위해 인력과 자원을 동물의 치료 및 교육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동대문 센터에 입소할 당시 덕순이는 생후 3개월 남짓한 진도 믹스견이었습니다. 수제비처럼 작은 귀를 팔랑거리며 사람 품을 파고들어 시고르자브종(시골 잡종의 애칭)으로 불리는 이 시기의 강아지들은 인기가 많아 입양 문의도 제법 들어옵니다. 아마 센터 측에서도 한창 귀여운 시기의 덕순이이라면 입양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했을 겁니다.
덕순이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건 나중에야 확인됐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들 사회성 좋고 애교도 많은 덕순이가 이름을 부르면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소리 지시에 반응이 없는 게 아니라 소리를 못 듣는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덕순이는 기대 이상으로 영리한 견공이었어요. 센터 관계자들이 덕순이의 청각장애를 확인한 뒤 교육 방식을 바꾸자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비록 소리는 듣지 못해도 인솔자의 손 모양을 보고 학습하는 요령을 금방 터득했거든요. 인솔자의 ‘손’이라는 말은 듣지 못하지만 대신 내민 손바닥을 보고 척, 앞발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엎드려’ ‘산책’ 등을 수신호로 배웠고, 얼마 뒤에는 배변패드 사용법도 숙지했습니다. 최근에는 일반 가정집에서 1개월간 임시보호를 경험했는데 임시보호자로부터 실내견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습니다.
덕순이가 이렇게 발전한 데는 단어마다 수신호를 정하고 끈질기게 교육한 센터 주무관들의 공이 가장 큽니다. 특히 김 주무관은 덕순이의 꼬물이 시절부터 현재까지 함께한 몇 안 되는 직원입니다. 그 기간 동안, 손바닥에 담기던 4㎏ 남짓 작은 덕순이는 어느덧 품에 가득 안기는 14㎏의 성견이 됐습니다. 김 주무관은 “덕순이가 얼마나 영리하고 기특한 친구인지 알기 때문에 입양길이 열리지 않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전합니다.
사연 알려지자…장기 입소견들 찾아온 인연
지난 4일 개st하우스팀은 유튜브 ‘개st하우스’ 채널의 구독자 세 사람과 함께 동대문 센터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구독자들이 주인공 덕순이와 옆 견사의 입소 10개월차 믹스견 제니를 만나 입양 교육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어요. 먼저 구독자들과 유기견이 팀을 이뤄 1시간가량 센터 주변을 산책했는데요. 제니는 낯선 봉사자와도 걸음을 맞추며 가을 산책길을 누볐습니다. 반면에 덕순이는 건장한 남성 봉사자와 맺어진 탓인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몇 걸음 못 가 김 주무관의 품으로 달려가 웃음을 자아냈는데요. 김 주무관은 “덕순이는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려면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20분쯤 지나자 덕순이가 그제야 말았던 꼬리를 다시 세웠습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수신호에 맞춰 모범견답게 행동교육 시범을 선보이더니 촬영하던 기자의 무릎에 올라앉는 애교도 부리더군요. 김 주무관은 “덕순이는 보호자와의 스킨십을 정말 좋아한다. 다정한 성격의 가족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봉사자들은 복지센터의 청소를 도왔는데요. 가전업체 로보락이 동대문 센터의 운영을 돕기 위해 로봇청소기와 습건식 청소기 등 최신 제품 4대를 후원한 덕분에 청소는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먼지 흡입과 물청소가 동시에 이뤄지고, 청소를 마친 뒤에는 도구의 세척과 건조도 자동으로 해결되더군요. 봉사자 4명이 4시간은 해야할 청소를 단 2명이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동물 돌봄 업무를 담당한 서윤식 실무관은 “남는 일손으로 동물의 사회화와 입양홍보를 더 할 수 있게 돼 큰 도움이 된다”며 좋아했습니다.
봉사 일정 막바지에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덕순이와 나란히 견사를 쓰는 장기 입소견 제니에게 생애 첫 입양 문의가 들어온 겁니다. 이날 제니와 함께 산책한 구독자 송상윤(31), 박동희(27) 커플이 입양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며칠 전 센터를 방문해 제니를 미리 만났고, 이날 산책을 하며 입양 의사를 굳혔는데요. 특히 동희씨는 “얼마 전 18년을 키운 반려견과 사별하며 마음고생이 컸기 때문에 다시 반려견을 기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손길을 받아들이는 제니를 보며 그만한 책임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각오가 생겼다”고 밝혔습니다.
상윤씨와 동희씨가 입양 신청서를 작성하는 내내 얌전히 웅크리고 있던 제니. 입소 당시 4㎏ 남짓 새끼 강아지였던 제니는 입소 10개월차인 지금은 덕순이와 마찬가지로 14㎏의 늠름한 성견이 됐습니다. 서류 작성을 마친 뒤 입양자와 제니는 직원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동대문 센터를 떠났습니다. 입양 상담을 담당한 한지선 주무관은 “정든 입소견이 떠나고 빈 견사를 보면 마음이 허전하지만 잘 적응했다며 입양자들이 보내주는 근황 사진을 볼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어느덧 2살이 된 덕순이에게도 반가운 인연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동대문 센터의 모범견, 주인공 덕순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연락처로 문의해주세요.
■ 동대문센터의 모범견, 덕순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 2살 황구
- 중성화 암컷, 13.5㎏.
- 청력 소실, 보호자와 수신호로 교감함. 잔짖음이 전혀 없음
- 성격이 온순하고 다른 동물과 잘 지냄. 애교 많음
- 앉아, 엎드려, 손 등 기초교육 완료. 배변패드 사용 잘함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서울시립 동물복지지원센터 동대문으로 문의해주세요
➡️ 02-921-2415
■덕순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67번째 견공입니다(117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