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리플레e] 지스타, ‘국제’ 게임전시회의 자부심은 유효한가(하)

입력 2025-11-15 08:00

지난 글에서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글에서는 지스타의 체질개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우선, 해외 1티어 게임사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들이 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 게임스컴의 성공은 전시 부스를 많이 수용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Opening Night Live, ONL)’라는 전용 무대 덕이 크다. ONL은 주요 글로벌 게임사들이 신규 업데이트와 신작을 발표하는 종합 론칭 행사로, 지금은 전 세계 게이머들이 지켜보는 개막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지스타도 같은 방식으로 ‘오프닝 나이트 코리아(Opening Night Korea)’를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글로벌 대형 게임사의 최초 공개 유치가 어렵다면, 아시아 주요 게임사의 첫 발표작이나 주요 업데이트를 올리는 메인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참가 기업에는 부스비·숙박·홍보 패키지를 묶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명확한 ‘노출 효과와 상징성’을 줘야 한다. 단순 초청이 아니라 실질적 이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퍼블리셔들이 지스타를 마케팅 일정에 포함할 것이다.

콘텐츠 구성도 바꿔야 한다. 현재 지스타 전시관은 모바일 게임 중심이다. 최근 들어 조직위가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콘솔·PC·인디·하드웨어·패밀리 체험 등으로 테마를 보다 세분화하고, 분야별 큐레이터를 두는 방식도 괜찮아 보인다. 게임스컴이 Devcom(개발자 콘퍼런스)과 인디존·레트로존·패밀리존을 결합해 산업과 팬덤을 동시에 사로잡았듯이, 지스타도 지스타만의 인디어워즈·e스포츠 국제전·게임 음악 공연 프로그램을 키워야 한다. 방금 꼽은 행사들이 지스타에서 전혀 열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개별 기업의 부스 이벤트나 일회성 행사에 그쳤기 때문이다.

기업 간 비즈니스 전시(Business to Business, B2B)의 내실화도 시급하다. 지금의 지스타 B2B관은 숫자만 많을 뿐 투자나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정확한 성과 수치도 공개되지 않는다. 조직위는 계약·MOU·투자액 등의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고, 매년 성과 리포트를 발간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 협회가 공동으로 해외 바이어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해 항공과 숙박을 지원하면 실질적인 교류가 생길 것이다. 아울러 게임사 간 협업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제작·투자·라이브 운영 등 실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조성해야 한다.

정부·업계·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스타는 한국 게임산업 전체의 행사다. 따라서 정부는 콘텐츠진흥원과 KOTRA와 함께 해외 홍보 예산을 공동 배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업계는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국내 대형 게임사 순번제를 도입해 매년 공동 스폰서로 참여하는 구조도 고려해볼 만하다.

지스타=부산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져야 한다. 지스타는 부산의 ‘지역 행사’가 아니다. 부산에서 지스타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화를 위해서는 더 유연한 선택이 필요하다. 부산과 수도권을 격년제로 돌리는 모델, 혹은 B2B 세션을 서울에서 분리 개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게임스컴이 라이프치히에서 쾰른으로 옮겨 세계 1위 쇼로 성장한 전례가 있다. 이처럼 개최 도시도 산업적 관점에서 다시 논의할 때다.

올해 지스타에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현장을 방문한다. 칼럼이 게재되는 토요일 11시, 총리의 지스타 방문이 이뤄질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나 각 정당의 정치인들이 지스타를 찾은 적은 여러 차례 있으나, 국무총리가 직접 지스타 현장을 방문한 것은 최초다. 김민석 총리는 과거 의원 시절부터 게임과 콘텐츠 영역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그의 지스타 방문이 더욱 반갑다. 국무총리의 방문은 게임을 단순한 여가가 아닌 ‘문화 콘텐츠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가 방문한다고 해서 지스타가 곧바로 글로벌 행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스타는 여전히 ‘국내 최대’ 게임쇼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얼마나 크게 열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새로 보여줬느냐’가 중요하다. 지스타가 다시 세계 무대로 서려면 판 자체를 새로 짜야 한다. 부스가 아니라 기획,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이미 조직위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해야 한다. 사이버펑크 2077이 출시 초기에는 혹평을 받았지만 거듭된 패치 끝에 ‘갓겜’으로 거듭났다. 지스타도 가능하다. 패치를 서두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