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싱크탱크 “韓 공정위…中엔 관대, 美는 표적 삼아”

입력 2025-11-13 17:26 수정 2025-11-13 17:42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8월 14일 인사 청문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로 출근하며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의 아시아 전문 싱크탱크 아시아정책연구소(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NBR)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NBR은 공정위의 반독점 규제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고 정치화돼 있으며 국제 기준과 달리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2일(현지시간) 발표된 ‘KTFC(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집행이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50쪽 분량 연구보고서는 공정위의 반독점 규제 집행에 대해 “선진국의 일반적 기준과 상이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수 미국계 기업 임원들의 비공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됐다. 해당 보고서 저자인 나이절 코리 NBR 연구원은 “여러 기업이 한국 공정위 규제를 보호무역적이라고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 공정위의 조치는 미국 기업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양국 관계에도 해를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한국 공정위가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근거만으로 조사를 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예고 없는 기습 방문으로 직원들을 압박하고 조사와 관련한 자료 제출이 지연될 경우 형사처벌을 경고하며 압박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 기업 임원은 “조사관들이 사무실에 몇 주 동안 상주해있었다”며 “영업기밀을 포함한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조사관이 떠난 뒤에도 다시 예고 없는 조사가 이어질까봐 직원들이 늘 긴장해있다”고 했다. 다수 기업은 “조사가 2~4개월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지속적인 규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호소했다.

한국 공정위의 규제가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 기업에 더 엄격하고 한국이나 중국 기업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이다. 여러 기업은 인터뷰에서 “비슷한 혐의를 받는데도 한국 대기업이나 중국 플랫폼 기업에는 훨씬 강도가 낮은 수준의 조치가 내려진다”고 주장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앱 협회 등은 한국 공정위가 사실상 공정거래법을 무기화해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규제가 집중돼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플랫폼 독점규제법은 계속해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법안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을 참고해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 도입, 우월적 지위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NBR은 보고서에 이미 존재하는 불공정 대우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공정위는 국내·외국 기업을 막론하고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며 소비자 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NBR은 한국의 공정거래법 체계가 절차적 투명성과 사후 검증 장치를 강화하지 않으면 사실상의 비관세 장벽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관세 장벽 문제를 주요 통상 현안으로 삼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26년 외국무역장벽보고서(NTE)에 한국 공정위 사례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한국 정부는 공정위의 집행 등을 통해 미국 기업인 구글·애플·메타·쿠팡 등을 겨냥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맞서 한미가 동맹으로서 함께 추진하는 전략에도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한미 양국이 안보·방산에서의 협력뿐 아니라 디지털 통상·공정 경쟁 이슈까지 논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 공정위 정책이 향후 한미 동맹에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