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寶石·gemstone) 산업은 인류의 미감과 욕망을 비춰 온 ‘빛의 산업’이다. 보석으로 만들어진 장신구를 흔히 ‘주얼리(jewelry)’라고 부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의 주얼리 수출액은 5억6500만달러(약 8300억원)로 전년 대비 31.4% 증가했다. K-푸드, K-팝, K-뷰티에 이어 한복과 노리개를 앞세운 ‘K-주얼리’가 해외에서 각광받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의 보석산업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손재주와 천혜의 자연자원이 만나 이뤄진, 가장 큰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산업입니다. 세계 최고의 품질과 브랜드 스토리를 지닌 K-주얼리는 글로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반세기 가까이 국내 보석산업 현장의 한복판을 지켜온 ㈔한국보석협회 홍재영(71) 명예회장의 일성이다. 홍 명예회장은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공기술, 첨단기술과 결합한 융·복합 산업으로서의 잠재력, 인류의 건강과 행복까지 확장 가능한 미래성을 강조하며 보석산업의 밝은 미래를 전망했다.
하지만 보석산업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지난해 주얼리 수입액은 11억7200만달러로, 수출의 두 배가 넘는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히 부족한 분야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홍 명예회장이 “정부 차원의 규제 혁신과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홍 명예회장은 2021년과 2023년 각각 종로구의회, 서울시의회에서 ‘귀금속·보석산업 활성화 지원조례’ 제정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이를 통해 ‘K-주얼리 종로페스티벌’과 ‘서울 주얼리주간 붐업(Boom-Up)’과 같은 연례행사의 물꼬를 텄다.
홍 명예회장은 국내 보석산업의 미래는 연구개발(R&D)·인재 양성·디지털화·디자인 혁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보석산업을 두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손재주와 천혜의 자연자원이 만나 이뤄진, 가장 큰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산업”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다만 최근 금값 상승이 지속되면서 업계가 위축된 것도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첨단기술과 접목해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보석산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세제 구조’와 ‘양성화 문제’가 꼽힌다. 홍 명예회장은 “과거에는 보석이 사치품으로 분류되면서 높은 세금이 부과됐고,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무자료·현금 거래 등 음성적 거래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로, 정부와 협력하여 세금 부담을 낮추고 모든 거래를 양성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래 투명성은 산업의 신뢰도와 청년 인재 유입에도 직결되는 핵심 요소라는 설명이다.
홍 명예회장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키워드로 ‘품질’과 ‘스토리’를 제시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보석산업 강국은 저마다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계적 품질과 브랜드 스토리를 갖춘 K-주얼리를 내놓으면 글로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장기 육성 전략, 언론과 다양한 매체의 지속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홍 명예회장은 최근 들어 이른바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으로 상징되는 K-문화의 인기가 국내 보석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했다. “한복이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전통 노리개의 수요도 함께 늘었습니다. 노리개는 K-주얼리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들이 구매한 노리개가 한국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원산지와 제작 과정, 디자이너 정보 등을 투명하게 인증·표시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차세대 인재 양성에 대한 그의 지론은 확고했다. 홍 회장은 “저희 세대는 망치로 두드리고 쇠줄로 다듬어가며 기술을 익혔지만, 지금은 3D 프린터로 모형을 제작해 공정을 혁신적으로 단축하는 시대”라며 “전통기법과 디지털 기술을 조화롭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국보석협회는 학생들이 신입 디자이너로 출발해 중견 디자이너로 성장하기까지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보석산업 전반에 걸친 구성원들의 결집력을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와 지자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사랑도 당부했다.
“보석업계 기능인과 장인, 디자이너, 유통업계가 흩어져 있으면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다면 업계 전체가 하나로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산업의 기반은 정신문화와 손재주입니다. 여기에 정부·지자체·사회 구성원의 관심과 애정이 더해진다면 K-주얼리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