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대신 글러브… 각 잡고 링에 선 엔씨소프트

입력 2025-11-13 14:58 수정 2025-11-13 15:06

국내 대형 게임사의 대명사로 군림해 온 엔씨소프트가 스스로 도전자를 자처하며 링에 섰다. 한국에서 세계로, 한국형 MMO에서 각양각색의 신(新) 장르로의 혁신적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처음 공개한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향한 엔씨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 엔씨소프트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벡스코를 거점으로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1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 2025 현장에서 미디어 초청 오프닝 세션을 진행했다. 단상에 깜짝 등장한 김택진 최고창의력책임자(CCO)는 “이번 지스타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여는 자리”라며 사활을 건 ‘역량 응집’을 강조했다.


“플레이어는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는 말로 입을 뗀 김 CCO는 “우리가 만든 게임이 세상에 나올 때쯤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새로운 기술과 세대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변화 속에서 우리의 게임이 선택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 ‘모른다’는 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엔씨는 더 다양한 방향을 비추고자 한다. MMORPG의 본질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고, 슈팅·액션·서브컬처 등 여러 장르에서도 우리만의 색깔이 담긴 게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엔씨가 그려가는 새로운 미래와 도전을 따뜻하게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엔씨소프트가 준비 중인 신작 라인업의 가장 큰 공통점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론칭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될 정도로 세계 시장 진출 의지가 강하다. 기존에 국내 비중이 높았던 MMORPG 중심 행보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배재현 빅파이어게임즈 대표겸 신더시티 총괄 프로듀서는 “오늘 보신 게임 모두가 글로벌 론칭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일부 타이틀은 첫 출시가 글로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신더시티도 비슷한 방식으로, 되도록 글로벌 동시 론칭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픈월드 택티컬 슈터를 표방하는 트리플A 신작 ‘신더시티’는 이미 ‘월드클래스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웰메이드 기대작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매력이 강한 액션 RPG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는 일본 매체들로부터 일찌감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시간을 에너지로 치환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하이퍼 서바이벌 슈터 ‘타임 테이커즈’는 배틀로얄 장르의 루키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몬스터 헌터’의 아성에 도전하는 오픈월드 MMORPG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는 이번 지스타에서 첫 공개된 트레일러의 화려함으로 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다음 주 국내와 대만에 출시하는 회심의 신작 ‘아이온2’ 역시 내년 글로벌 론칭을 목표로 작업이 한창이다.

엔씨소프트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스타 메인 스폰서를 맡아 300부스 규모의 대형 전시관을 꾸렸다.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은다는 각오다.
이성구 부사장

이번 지스타 TF장을 맡은 이성구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지스타에 오래 불참하는 동안 게이머와의 소통, 함께하는 데 소홀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며 “처음 메인 스폰서를 맡으면서 업계 맏형으로서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 총괄 프로듀서를 겸하는 이 부사장은 이번 지스타에서 해당 게임 트레일러를 최초 공개한 이유에 대해 “해외 유명 게임쇼보다 지스타에서 가장 멋지게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오프닝 세션에서 소개된 5종 신작에는 이른바 ‘가챠’, ‘페이 투 윈(pay to win)’ 등으로 폄훼돼온 극악의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돼 있지 않다. ‘리니지M’을 통해 한때 가챠 BM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이 부사장은 “한국형 MMO의 비즈니스 모델은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의 BM은 아이온2와 유사한 방향으로 ‘착한 BM’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으로 만들고 있고, 글로벌 유저가 선호하는 형태를 지향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성구 부사장

행사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은 세계 최초로 공개된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였다. 이 부사장은 “2017년 원작 ‘호라이즌’을 플레이하고 소위 뻑이 갔다. 곧바로 MMO로 만들고 싶었고, 2019년쯤부터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원작사인) 게릴라 게임즈로부터 모든 리소스와 데이터, 자료를 제공받아 원활하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다”며 “국내 MMORPG가 주로 PvP 중심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PvE에 초점을 맞췄다. 부족이 되어 거대한 기계 몬스터를 공략하는 세계관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이 부사장은 “출시일은 협력사와 조율해야 하지만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 사이로 예상한다”며 “내년에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작 팬덤을 노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MMO를 잘 모르는 유저에게 이번 기회에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일 출시를 앞둔 ‘아이온2’에 대해 김남준 총괄 PD는 “이번 지스타에서 커스터마이징과 8개 직업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 미리 플레이해 보고 론칭 이후 어떤 클래스를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퍼블리싱사업총괄

엔씨의 또 다른 눈에 띄는 행보는 ‘퍼블리셔’로서의 도전이다.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와 타임 테이커즈는 모두 외부 개발사의 게임을 엔씨가 서비스하는 구조다. 임원기 퍼블리싱사업총괄은 “엔씨는 MMO 전문회사라는 인식이 있어 개발사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매일 소통하고 필요하면 출장도 가며 1년 정도 지나니 프로세스가 잡혀가고, 이를 계기로 다른 회사와 협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엔씨가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고 있다”며 “앞으로 퍼블리셔로서도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