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스탄불을 거쳐 거의 24시간을 비행해야 닿을 수 있는 곳. 북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모로코 알제리 말리 세네갈에 둘러싸인 이슬람 공화국.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서쪽 끝자락 ‘모리타니’엔 일년 내내 건조한 모래바람이 거리를 휘감는다. 이곳 수도 누악쇼트의 이름은 베르베르어로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을 뜻한다.
인구 440만여명, 국민 99.99%가 이슬람교인 모리타니. 매일 뜨거운 직사광선이 내리쬐고 사방에서 모래가 흩날려 이곳 주민들의 눈 건강은 날이 갈수록 나빠진다. 온몸을 휘감는 모리타니 전통의상(다라, 멜라파)으로 가릴 수 있는 곳도 입과 코가 한계다.
이곳에서 만난 안과 전문의들은 국민 상당수가 안질환을 앓고 있고, 실명 원인의 절반 이상이 백내장이라고 했다. 한데 이곳 안과 전문의는 전국에 40명 안팎. 수도 누악쇼트에 살지 않으면 평생 안과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국민이 대다수다. 그런 이들을 위해 한국과 미국의 의료진이 11월마다 모리타니를 찾고 있다. ㈔비전케어의 비전아이캠프다.
캠프 이튿날인 11일(현지시간) 누악쇼트 국립병원 앞.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부터 환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백내장 때문에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도록 어둠 속에 갇혀 살던 이들.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사막길 800㎞를 가로질러 온 환자도 있었다.
진료가 시작되자 한 층짜리 안과 병동은 환자들로 가득 찼고, 대기 행렬은 건물 밖까지 이어졌다. 양쪽 눈이 모두 백내장인 환자여도 수술은 한쪽만 받을 수 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의 시력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다. 인력과 시간, 인공수정체 등 재원을 고려했을 때 닷새간 진행되는 이번 캠프에서 수술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80명. 올해 캠프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면 1년 뒤 다시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환자들은 가족들 손을 잡고 꿋꿋이 차례를 기다렸다.
수술은 기도로 시작됐다. 비전케어 운영이사인 정한욱 고창우리안과 원장이 양손을 포개 환자 눈에 살며시 올린 뒤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환자는 알라에게, 의료진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렸다.
짧은 기도를 마친 뒤 의료진은 수술용 현미경에 눈을 고정한 채 메스를 들었다. 이어 환자의 각막을 3㎜쯤 절개한 뒤 간호사가 건네는 초음파 수술 장비를 사용해 백내장으로 뿌옇게 변한 수정체에 초음파를 쏘기 시작했다. 불투명해진 둥근 수정체가 액화돼 흡입됐다. 인공수정체를 접어 넣고 펼치는 마지막 과정은 1mm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정밀 작업이었다. 온종일 이런 수술이 20번 반복됐다.
“아들 얼굴이 보여요. 잘생긴 내 아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까지 1년반 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바델(68)씨는 수술 하루 만에 아들을 봤다. 아들은 곧장 엄마 이마에 입을 맞췄고, 바델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며 기자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아들 휴대폰으로 지금 이 순간을 찍어달라고, 아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루 만에 왼쪽 시력이 0.5까지 회복된 바델씨에게 의료진은 사흘 뒤쯤이면 되면 시력이 더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7년 전부터 시야가 흐려졌다가 3년전 실명한 삼바시(78)씨도 오른쪽 눈 시력을 되찾았다. 실력 좋은 한국인 의사가 온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아들의 차를 타고 450㎞ 거리를 왔다는 그는 “현지 의사들에겐 눈을 고칠 방법이 없다고 들었는데, 비전케어에서 제 눈을 고쳐주셨다”며 “이제 혼자서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모리타니 국회의원인 카디자(31) 의원도 가족과 지인 등 6명에게 비전아이캠프를 소개했다. 2015년 통역 봉사로 비전케어와 인연을 맺은 그는 “2023년 국회의원 당선 전까지 비전케어에서 통역 봉사를 했다”며 “비전케어에서 15년 정도 모리타니에서 백내장 수술을 해줬는데 의료사고가 난 적이 한 건도 없었다. 이곳 주민들은 현지 의사보다 한국과 미국에서 온 의료진을 더 신뢰하고 있다”고 했다.
2012년 시작한 모리타니 비전아이캠프는 지난 13년간 누악쇼트에서 12회 진행됐다. 한데 여전히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수술을 받은 환자보다 많다. 80명을 다 치료해도 내년엔 또다시 수백 명이 줄을 선다. 치료하는 속도보다 백내장 환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전요한 비전케어 모리타니 지부장도 “환자 숫자만 따지면 현실적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다만 그는 “치료받은 한 분 한 분은 새 인생을 선물로 받으신다”며 “매년마다 비전케어가 온다는 소식에 1년 동안 희망을 품고 사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떠난 뒤에도 전 지부장은 환자들과 교류를 이어간다. 수술 경과를 지켜보고, 필요하면 안경도 맞춰준다. 어떤 환자들은 자신의 눈을 고쳐준 의료진에 대해 묻는다. 그때 전 지부장은 이야기한다. 그분들은 소명을 품고 오신 분들이라고, 모리타니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러 온 거라고.
누악쇼트(모리타니)=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