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 우승컵은 놓쳤다. 그래도 ‘퍼펙트’ 이승민은 월드 챔피언십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KT 롤스터는 9일(한국시간) 중국 청두 동안호 스포츠 파크 다목적 체육관에서 열리는 2025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T1에 2대 3으로 졌다. 2대 1로 앞서던 중 4·5세트를 내리 지면서 역전패했다.
세계 2위. 시즌 개막 전 KT가 받았던 기대치는 진작에 충족했다. 연초 KT는 LCK에서 중상위권 수준의 팀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탑과 바텀 듀오의 기량이 부족해 애를 먹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탑과 바텀에서 누수가 생겨 애를 먹는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특히 그 중에서 탑라이너 이승민은 올 시즌 KT를 가장 많이 웃고 울린 선수였다.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던 지난해 루키 시즌과는 달리 올 시즌 초반에는 경기력 편차가 심했다. 라인 스와프가 잦은 메타에서 헤매는 기색이 역력했다. 2군의 ‘캐스팅’ 신민제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긴 날들도 있었다.
복수의 관계자가 이승민의 부진을 의아해했다. 그는 데뷔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은 선수였다. 대다수 어린 선수들에게 난제인, 재능의 벽을 실감하게 되는 라인전이 이미 1군급이라는 평가를 받아서였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고전했다. 관계자들은 경험이 적은 이승민이 팀 게임에서만 요구되는 실시간 의사소통 능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봤다.
이승민은 로드 투 MSI를 기점으로 다시 부상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정규 시즌 후반기(3~5라운드)에 그의 경기력은 다시 저점을 찍었다.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경기에서 사이온으로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는 한 사이트에서 실검 1위에 오를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입을 통해 회자됐다. 팀처럼 그도 롤러코스터였다.
이승민의 두 번째 기점은 LCK 플레이오프에 찾아왔다. 젠지와의 2라운드 경기 승리를 발판 삼아 그도, KT도 부상하기 시작했다. 3시드로 진출한 월드 챔피언십, 이미 ‘제우스’ 최우제나 ‘기인’ 김기인, ‘도란’ 최현준, ‘킹겐’ 황성훈 등을 상대로 2년 동안 실전 경험을 쌓은 그에게 해외 탑라이너들은 비교적 쉬운 상대였다. 그는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라인전 단계부터 우위를 점했다.
그는 준결승전에서 ‘기인’ 김기인을 틀어막아야 하는 미션까지 수행해냈다. 오른, 크산테 등 탱커를 골라 한타 위주의 게임을 유도한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이승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타로 승부를 보기로 정했는데 그게 잘 통했다. 기본기는 ‘기인’ 선수가 월등하다고 생각해서 나도 납득했다”고 밝혔다.
비록 이날 T1과의 결승전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이승민은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 나설 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임을 증명해냈다. 특히 3세트에서는 크산테로 딜링과 탱킹,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해냈다. 상대가 자신을 노리고 포위망을 좁혀오자 궁극기 ‘총공세’를 써서 단숨에 거리를 벌리는 슈퍼 플레이도 선보였다.
김기인과 최현준,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붙었던 ‘369’ 바이 자하오나 스크림을 통해 대련했던 그의 롤 모델 ‘플랑드레’ 리 쉬안쥔까지. 그에게 첫 월드 챔피언십은 다양한 스타일의 선수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와도 같았다. 비록 우승은 놓쳤어도 그에게 첫 월드 챔피언십은 충분히 가치 있는 1개월이었다.
이승민은 결승전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움직임과 생각,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고자 했다. 그런데 오늘은 겉핥기만 한 거 같아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느낌으로 흡수해야 할지 이번 월드 챔피언십을 통해 알았다”면서 “내년에는 (다른 선수들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