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건을 계기로 인신매매 피해에 적극 대응하겠다던 성평등가족부가 각 지역에서 관련 피해자를 지원할 보호기관을 설립할 예산은 3년째 편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인신매매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회에 제출된 성평등부 예산안 등에 따르면 성평등부는 내년도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지원 예산으로 5억3300만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 1억3200만원보다 32.9% 늘렸다.
구체적으로는 인신매매방지 홍보 및 교육자료개발, 실태조사를 위한 인신매매 방지기반 조성 예산 2억9600만원과 중앙권익보호기관의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사업을 위한 2억3700만원을 각각 배정했다. 반면 지역피해자권익보호기관 설립 예산은 2024년에 이어 올해까지 3년째 한 푼도 편성되지 않았다.
2023년 시행된 인신매매법은 전국 17개 시·도에 지역 인신매매 등 피해자 권익보호기관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있다. 지역 기관을 통해 피해 신고접수, 응급조치, 피해자 판정, 맞춤형 지원 연계까지 피해자 구조·지원을 위한 ‘원스톱’ 체계를 구축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이 기관을 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없다. 이로 인해 지역 보호기관에서 해야 할 피해 사례판정도 중앙권익보호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임시로 대신하는 실정이다.
인신매매 피해자로 식별·확인되면 여성인권진흥원이 사례판정위원회를 열어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서’를 발급, 이를 토대로 쉼터 입소, 법률·심리·의료 지원 등이 제공된다. 법적으로 이 업무는 지역 보호기관 몫이어서 현행법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서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캄보디아 사태를 통해 해외 인신매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인신매매나 성매매의 피해자분들이 우리 부처나 피해자 지원 상담소로 연락하시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 보호기관이 전무한 탓에 피해자 지원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역 보호기관이 전무한 데에는 지자체의 신청이 없는 것이 한몫한다. 인신매매가 성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 강력 범죄와 연관돼있다 보니 지자체들이 업무 부담을 느껴 적극 나서지 않고, 성평등부도 사실상 손 놓은 상태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계속 접촉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역권익보호기관 설치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