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상담 수요는 전국 다섯 번째로 많지만 정작 도내엔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를 겪은 도민들이 수차례 광주광역시를 오가야 하는 현실이 인권구제를 사실상 포기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는 부산, 광주, 대구, 대전, 강원 등 5곳에 설치돼 있다. 이 가운데 광주사무소가 전북·전남·광주·제주 등 4곳 광역지자체를 관할한다.
전북 도민이 인권침해를 당해 인권위에 도움을 요청하려면 광주까지 가야 한다. 자가용으로 왕복 3시간, 대중교통으로는 4시간이 걸린다. 장애인이나 노인,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겐 이 거리는 사실상 ‘구제 포기’나 다름없다.
문제는 인권침해 상담이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정 접수 후 사실 확인, 추가 자료 제출, 결과 통보까지 여러 차례 방문이 필요해 교통비와 시간 부담이 크다.
2020~2024년 최근 5년간 전북의 인권상담 신청은 평균 143건으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광주(378건), 서울(223건), 전남(204건), 경기(176건)에 이어 5번째로 많다. 인권 수요는 적지 않지만 행정 인프라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
광주인권사무소는 전국 5개 사무소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맡고 있다. 관할 행정단위가 719개로 부산사무소의 1.8배에 달한다. 2020~2024년 평균 상담 건수도 1188건으로 부산(814건), 대전(808건), 대구(699건), 강원(54건), 제주(47건)를 크게 웃돈다. 업무과중으로 전북지역 사건의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북도는 2017년부터 인권사무소 유치를 추진해왔다. 전북도의회는 2017년, 2020년, 2024년 세 차례 설치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도 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들도 연이어 결의문을 발표했다. 도는 청와대,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을 수차례 방문해 설치를 건의했지만, 지난해 7월 행안부 직제개정 최종안에서도 전북사무소는 제외됐다.
전북은 지난해 특별자치도로 출범했지만, 인권 인프라는 여전히 광주 관할에 머물러 있다. 초고령 사회 진입과 외국인 노동자·다문화 가정 증가 등 지역 특수성이 커진 만큼 독립된 인권사무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인권사무소는 단순한 민원 창구가 아니라 지역 인권정책의 구심점이자 중앙과 지방을 잇는 가교”라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걸맞은 인권 인프라 구축을 위해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최창환 기자 gwi122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