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플렉스 시즌6] 떠나는 광주, 남은 이들의 비전

입력 2025-11-09 08:53 수정 2025-11-09 17:33
광주광역시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를 떠난 이는 7962명. 인구 감소를 주도한 세대는 청년(73.6%)이었다. 광주 청년 인구는 2020년 41만4088명에서 지난해 36만9664명으로 5년간 4만4424명이 줄었다. 대학과 직장을 찾아,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청년들은 광주를 등지고 있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통계의 그림자 뒤엔 이 도시에 남아 빛을 밝히는 청년들이 있다. 국민일보 갓플렉스(Godflex)는 광주 집회를 앞두고 월광교회(김요한 목사) 청년 셋의 이야기를 들었다. 삼인삼색의 고백 속엔 떠남이 아닌 남음의 의미가, 불안이 아닌 비전이 담겨 있었다.

이윤지(30·보건교사)

이윤지(오른쪽)씨가 지난 7일 보건교사로 근무 중인 광주의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내 꿈도 서울에 있었다. 이른바 ‘빅5 병원’으로 알려진 대형병원. 그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목표였다.

서울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기 때문에 취업으로 보상받길 원했다. 서울의 화려한 문화생활, 더 많은 기회. 그곳에 가면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빅5 병원엔 불합격했다. 대신 광주의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간호사로 취업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품었던 의사의 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1년 반을 수능 공부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투석실에서 3년 가까이 근무했고, 올해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이직했다.

이윤지(오른쪽)씨가 지난달 14일 광주 우리M센터에서 이주민 여성의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열등감에 휩싸였던 적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선교’를 통해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3000명의 이주민이 모여 사는 광주 평동. 올해 6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월광교회 성도분들과 평동에 있는 ‘우리M센터’에서 이주민 대상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광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의료 선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먼 나라보다 먼저 가까운 선교지로 보내신 것 같다. 인제야 조금씩 깨달아간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까지 있음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이전에는 작은 광주에 남아있음을 늘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이곳에서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세상 성공을 좇기보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거할 때 더 행복하다.

하재은(24·대학생)

하재은(오른쪽)씨가 실습 중인 병원에서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전북 남원이 고향이지만 대학을 광주로 진학했다. 벌써 간호학과 4학년, 취업 준비와 간호사 국가고시를 병행하고 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 대다수는 광주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타지에서 온 친구들도 본가나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병원은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모두 광주에 있는 병원이다.

이런 결정엔 신앙 공동체의 영향이 컸다. 남원에서 고등학생까지 다녔던 교회엔 청년부가 없었는데, 월광교회엔 신앙과 비전을 나눌 또래가 많다. 청년부에선 순장을, 교회 사랑부에선 장애인 성도분들도 섬기고 있다.

하재은씨가 장애인 선교부서인 교회 사랑부 예배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를 떠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광주도 정착하며 살기 충분히 괜찮은 도시다. 수도권에 가면 경험할 것도 많겠지만, 도움받을 곳도 없고 생활비도 훨씬 많이 든다.

취업과 시험을 동시에 앞둔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불안하긴 하다. 하지만 매일 말씀 앞에 서는 시간이 나를 붙든다. 난 하나님과 교회에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랑을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싶다. 광주의 간호사로, 평범한 청년으로 내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 싶다.

유시언(34·소방관)

유시언씨가 2021년 충남 서산의 소방서에서 소방 차량을 정비하고 있다.

어느덧 7년차 소방관이다. 고향이 광주인데, 광주로 내려온 지는 이제 반년이 조금 넘었다. 그전까진 충남 서산과 서천에서 6년간 일했다.

소방관 시험을 준비할 땐 교회 찬양팀 리더였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기도 중에 환상을 봤다. 내가 불 속에서 찬양하는 환상이었다. 그때 이렇게 다짐했던 것 같다. 평생 이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교대 근무 때문에 매주 설 수는 없지만 3주에 한 번씩 찬양 인도를 계속하고 있다.

유시언(맨 오른쪽)씨가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다.

현재 근무지는 전남 광양이다. 편도로 1시간 30분이 걸리지만, 앞으로도 광주에서 출퇴근할 계획이다. 근무 중인 119안전센터에 크리스천은 나 포함 2명뿐이다. 누군가 해야 할 화장실 청소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같은 작은 일들을 도맡아 한다. 이미 동료들은 내가 크리스천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밥 먹기 전 기도를 하고, 교회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꺼내니까. 일상에서 모범을 보이는 게 곧 선교가 아닐까.

꼭 서울이나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신앙인으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 지방에 있다고 주눅들 필요 없다. 우리가 발 딛고 선 그곳이 하나님의 선교지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고 찬양하며 신앙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루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은혜를 누리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