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 의식의 거울…영혼의 주체는 될 수 없어”

입력 2025-11-08 13:53
윤철호 장로회신학대 조직신학 교수가 8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학회 제54차 정기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챗봇과의 대화가 ‘교감’ 더 나아가 ‘관계’로 확장되는 시대다. 미국 민주주의와기술센터(CDT)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고등학생의 19%가 자신 또는 친구가 AI와 ‘연애 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AI가 인간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때론 연인이 되는 현실 속에 ‘인간다움’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신학 전문가들은 이에 “AI는 인간 의식의 거울이지만 영혼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며 “기술이 만든 신화가 아니라 관계와 영성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학회(회장 황덕형)는 8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총장 황덕형)에서 제54회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AI와 기술시대의 영성’이란 주제로 열린 행사는 기술문명이 인간의식과 신앙, 영성에 미치는 영향을 신학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취지를 담았다. 자리에는 AI에 관심을 둔 현직 목회자를 비롯해 교수 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윤철호 장로회신학대 조직신학 교수는 인간의 의식은 단순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몸과 감정, 관계 속에서 형성된 ‘체화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과 인간 의식 - 과학철학적 논의와 신학적 성찰’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그는 “AI는 기능적으로는 인간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생명과 역사, 몸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내면 세계는 갖지 못한다”며 “AI 연구의 지향점은 인간 대체가 아니라 인간성의 재발견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철학·신학이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인간 의식의 본질을 탐구할 때 기술문명 속에서도 참된 인간성과 공동체의 선을 지켜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이 인간의 정신을 옮길 수 있다고 해도 영혼의 도덕적 창의성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트랜스휴먼 신학 갱신을 위한 제언’을 발제한 박욱주 연세대 교수는 “기술은 인간 능력을 확장할 수는 있어도 인간됨의 본질은 한계를 자각하고 관계 속에서 책임지는 데 있다”며 “AI 시대의 신학은 인간을 신격화하는 서사를 넘어 영혼의 윤리성과 창의성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경 이화여대 교수는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기술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등장하는 ‘데이터교(Dataism)’ 개념을 언급했다. 그는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구원을 약속했다면, 데이터교는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통한 구원’을 말한다”며 “과학기술이 인간을 구원하고 궁극적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은 종교적 언어를 빌린 새로운 신앙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 종말론은 기술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라며 “기술 시대의 신학은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 새 창조를 기다리는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경 이화여대 교수가 8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학회 제54차 정기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