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도 기록되지 못한 ‘유령 아이’…“미등록 이주아동 위한 실질적 보호장치 시급”

입력 2025-11-07 16:37 수정 2025-11-07 19:05
미등록 희망포럼과 의원들이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의 권리 향상을 위한 국회 포럼'을 개최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제공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A양(16)은 첫 돌을 지나기도 전에 입양과 파양을 겪었다. 부산의 한 보육원에 맡겨져 10년 넘게 무국적 아동으로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얼굴도 모르는 생모가 출입국 심사에서 적발되면서 자신의 국적이 베트남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모를 따라 베트남으로 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A양은 끝내 한국에 남는 길을 택했다. 출생등록을 마치고 비자를 받아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2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는 A양처럼 출생부터 법적 기록 없이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이 적지 않다.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랐지만 출생신고나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0~18세 아동을 가리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일 미등록희망포럼(대표 은희곤 목사)과 여·야 의원들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미등록 이주 배경아동의 권리향상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미등록희망포럼 5개 단체(기독교대한감리회, 미등록아동지원센터,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와 이학영 국회부의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동주최로 진행했다.

5년 전 대법원과 2023년 헌법재판소는 “출생등록권은 모든 아동의 기본권이며 다른 모든 권리 보장의 전제”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도’가 실시됐지만 적용 대상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만 해당한다. 외국인 아동의 출생 사실을 등록할 법적 근거는 부재한 상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우리나라 국민으로 그 대상을 한정하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배경아동 국회 포럼 발표자들이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제공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제도적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이주배경아동의 출생을 신고하는 제도 마련을 통해 이들을 국가 행정 체계 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출생등록을 하면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불필요한 논쟁과 혐오가 생기고 있다”며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출생이 누락되지 않도록 행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성장 기반을 가진 미등록 외국인은 사회구성원으로 고려해야 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공진성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서 성장한 미등록 외국인은 상당 기간 한국에서 성장하며 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한국인과 같은 사회문화적 경험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출생이든 타국에서 중도 입국하든 아동의 미등록 상태는 그들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이들을 강제퇴거 할 경우 언어 장벽, 사회적 기반 단절, 정체성 혼란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건강과 교육 보육 등의 복지적 측면에서 차별받고 있는 이주배경 아동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주배경 아동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적 차별을 해소할 법적·행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만나 ‘민생·안전을 위한 10대 법안’을 전달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를 요청한 것이다. 10대 법안에는 ‘외국인아동출생등록법’ 제정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은희곤 대표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돕는 법안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며 “외국인 아동들의 인권을 지키고 이들을 사회구성원 안에서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들이 우리와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상시적인 법적 보호와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주배경아동을 보호하는 일은 인권의 문제이자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