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간 국민연금 보험료의 사업주 체납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과 달리 국민연금만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근로자의 연금 가입 기간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피해가 고스란히 근로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3개월 이상 4대 사회보험 장기 체납액은 지난해 말 기준 1조1217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 체납액은 4888억원(3만1000개 사업장)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민연금 체납은 최근 다시 증가세다. 2021년 5817억원(4만개 사업장)에서 지난해 4888억원으로 줄어드는 듯했지만, 올해는 6월까지만 집계한 금액이 이미 5031억원에 달한다.
장기 체납 사업장 중에는 17년 넘게 보험료를 내지 않은 곳도 있다. 한 사업장은 213개월 동안 총 1억6000만원가량을 체납했다. 2년여만에 26억원 넘게 미납한 사업장도 있다. 이 기간 동안 해당 사업장 근로자들은 매달 월급에서 본인 부담분(4.5%)을 떼이지만 가입 기간은 인정되지 않는다.
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은 사업주가 체납해도 근로자가 실제 근무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혜택을 그대로 적용한다. 정부가 먼저 근로자를 보호하고 추후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사업주가 낸 보험료가 있어야 가입 기간을 인정한다. 가입 기간을 100% 인정받고 싶다면 근로자가 이미 낸 자기 부담분을 다시 내거나, 사업주 몫까지 합쳐 9% 전액을 혼자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체납 사업장에 대한 징수 조치도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최근 10년간 국민연금 체납으로 형사 고발까지 이어진 건은 총 855건으로, 이 가운데 실제 징수된 금액은 418억원 중 82억원(19%)에 그쳤다. 폐업 등으로 징수할 수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된 ‘관리 종결’ 체납액도 1157억원에 이른다. 법적 조치가 솜방망이에 그치는 사이 사업주는 재산을 빼돌리거나 시간을 끌며 법망을 빠져나가기 일쑤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