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드디어 주말입니다. 여러분은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요.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의 날로 삼을 수도, 아니면 주일(主日)이란 표현 자체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온전한 쉼을 위해 힘쓸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기독교인일수록 후자를 지지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폴란드 출신 유대교 신학자로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선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1907~1972)도 후자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했습니다. “성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에게 노동은 목적을 향해 가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목적은 안식을 말합니다. “인간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 아니므로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은 성경의 정신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독 고전 맛집’의 13번째로 소개할 헤셸의 ‘안식’(복있는사람)은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사용하는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안식일 영성’을 현대적으로 해설한 책입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1937년 유대계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뒤를 이어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교육기관에서 교편을 잡다 이듬해 나치에 의해 쫓겨납니다. 폴란드와 영국을 거쳐 40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이후 히브리 연합대학(HUC)와 미국 유대신학교(JTS)에서 철학과 유대교 윤리를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합니다.
미국행을 택한 그와 달리 유럽에 남은 그의 가족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헤셸은 자신이 찬탄해 마지않았던 독일 문명이 민족을 살해하는 도구로 쓰이고, 동료 학자들이 이에 가담한 데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헤셸은 자신의 아픔을 증오의 원료로 삼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며 신앙인의 사회 참여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민권 운동에 나서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적극 동참한 이유입니다. “앨라바마주 셸마에서 진행한 시민권 행진 당시 내 발은 기도하는 거 같았다”는 말을 남긴 헤셸을 놓고 킹 목사는 “진정으로 위대한 예언자”였다고 극찬했습니다.
책에는 시간과 쉼, 안식일에 관한 통찰이 담긴 시적 문장이 가득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건 시간이라는 화폭 위에 신비하고 장엄한 창조의 절정을 그리는 것과 같다” “시간은 휘황찬란한 태고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와 대지를 열어젖히고 고립된 존재들을 악기 삼아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문장이 그렇습니다. “존엄성을 상실한 노동은 불행의 원인이고 정신(영혼)이 없는 휴식은 타락의 원천이다”처럼 안식에 관해 현대인이 새길만한 통찰도 나옵니다.
그렇다고 노동의 가치를 경시하는 건 아닙니다. 안식일에 노동을 삼가라는 건 결국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라’(출 20:9)는 명령의 속편과도 같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물질로 대표되는 “기술 문명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획득하는 데” 안식일의 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유대교 신학자인만큼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에겐 낯선 의례나 전통을 설명하는 내용도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간을 정복하고 시간을 성화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라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도 피로를 느낄 정도의 행위는 삼가라” 등 현대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교훈도 적잖습니다. 최근 이 책으로 설교한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안식 혹은 안식일을 공간이 아닌 시간의 개념으로 설명한 저자의 관점은 ‘주일 성수’에 대한 의미를 숙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습니다.
헤셸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안식일의 맛을 음미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내세에서 영원의 맛을 즐길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일상을 멈추고 신의 현존을 감지할 때 경이로운 내세를 잠시나마 맛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란 말이 유행인 요즘, 주말을 맞아 시간의 주인인 창조주를 찬양하며 오직 안식이 목적인 쉼을 누려보는 건 어떨지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