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30년 내 무신론 국가가 될 거란 미래학자 진단이 나왔다. 500만~600만명 수준인 한국교회 출석 인원은 200만명 이하로 주저 않을 거란 전망도 함께 제시됐다.
국민일보목회자포럼(회장 이기용 목사)은 6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교회에서 ‘한국교회, 열린 토론 광장’을 주제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진단하고 다음세대 소통 전략을 모색했다. 3부 토론 패널로는 이기용(신길교회) 박성민(한국대학생선교회) 남빈(뉴송처치) 이인호(더사랑의교회) 박명룡(청주 서문교회) 김형근(순복음금정교회) 목사와 전석재(서울신대) 교수, 최윤식 박사가 참여했다. 아래는 ‘교회와 미래’ 토론 전문.
△사회=이기용 목사
=잭 웰치라는 20세기 최고 경영가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Change or Die)는 명언을 남겼다.
교회가 미래에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난 생존할 거라고 믿지만, 한국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될 수도 있다. 기독교가 종교 중 1위를 유지하고 있을까 고민이 되는 시점이다. 한 교단에선 2050년에 성도 52만명이 감소할 것이라고 했고, 젊은 세대는 77만명이 줄어서 70만명만 남게 된다는 등 우릴 우울하게 하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교회는 어떻게 긍정적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
△최윤식 박사=한국교회 미래와 관련해 두 가지 도전을 얘기하고 싶다. 이미 시작된 도전과 이제 시작될 도전이다. 한국교회 미래를 예측했을 때, 한국교회 실제 출석 인원은 500만~600만명 정도다. 더 큰 위기는 기독교의 감소가 아니라, 2050~2070년경 무신론 국가가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는 200만명 밑으로 출석 인원이 감소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한국교회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지적을 받고 있다는 건 비기독교인 기독교인 모두에게 교회가 적은 관심이라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 사회로 가는 길에서 반전을 이루려면 AI의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 AI는 무신론을 강화한다. 무신론은 신이 없어도 된다는 사상이다. AI는 초개인화 시대에 목회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콘텐츠 측면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사역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은혜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신론을 고착화시킬 수도 있다. 한국교회가 어떤 식으로 AI를 다루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목사=좋은 말씀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못하겠다. 연이어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다. 우리나라에 목회자는 10만명인데, 무당이 80만명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영적인 갈급함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까.
△박명룡 목사=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67%가 무신론자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33%에 불과하다. 유교적 세계관 속에서 현실지향적인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볼 때 매우 무신론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동아시아 5개국 중 운세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즉, 우리 사회는 신의 존재는 믿지 않지만 영적 세계에 대한 갈급함은 그 어느 나라보다 크다는 뜻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라고 생각한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예장합동이 공동으로 올해 4월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떠나려 하는 청년들의 가장 큰 이유는 ‘종교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신앙의 확신 부재’였다. 이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고, 자신이 무엇을 믿으며 왜 믿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교회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예수님은 왜 유일한 구원자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신앙의 근거와 기독교적 변증이 무너진 것이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교회는 성령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거나, 혹은 합리적 근거를 통해 ‘내가 무엇을 왜 믿는가’를 가르쳐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기독교 교육은 어린이로부터 장년까지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는 충분히 있다. 예수님이 다른 종교 지도자와 달리 신적 존재라는 근거도 분명하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진리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청년들은 교회를 의심하고 떠나고 있다.
△남빈 목사=홍대에서 목회하는 제 입장에서 지금까지 나누신 말씀들에 공감이 많이 된다. ‘한국교회 트렌드’ 책을 보면,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즉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이 바로 오늘의 젊은 세대를 설명한다고 본다.
난 2017년 홍대 중심가, 클럽 거리 한복판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예배당은 원래 와이지(YG)에서 사용하던 클럽이었다. 그 클럽이 문을 닫자, 우리는 그 공간을 임대해 예배당으로 바꿨다. 지금 그곳에서 9년째 목회하고 있다.
홍대는 젊음의 거리다. 밤새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코로나를 전후로 보니 주변 상점들 중 많은 곳이 문을 닫았는데, 이상하게도 사주집과 타로점 가게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홍대에서 사주·타로는 이제 청년들의 일상적인 데이트 코스가 됐다. 그만큼 청년들이 ‘자신의 운명’ ‘삶의 방향’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영적인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홍대 거리에는 여전히 전도하는 단체들이 많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름으로 거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대부분이 신천지 같은 이단 단체다. 거기엔 놀랍게도 20대 청년들이 많다. 한 이단 단체 집회에 가보면 청년이 60~70%를 차지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다. ‘예수님이 이만희보다 매력이 없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문제는 교회에 있다고 본다. 청년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 이유는 복음의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전통, 제도, 부흥의 유산이 모두 ‘지켜야 할 틀’이 되면서 오히려 복음을 시대의 언어로 전하지 못하게 됐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교회는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있다. 그 사이에 청년들은 복음의 본질이 아닌 ‘형식적인 종교’만 보고 떠나가고 있다.
△전석재 교수=남빈 목사님 말씀에 공감한다. 나도 최근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주제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젊은 세대는 영적이고 초월적인 경험에 대한 갈망이 크지만, 제도 종교에는 매우 거부감을 보였다.
교회는 여전히 수직적 구조 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철저히 수평적인 문화를 살아간다. 이 차이가 청년들에게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교회는 권위적이고, 문턱이 높고, 심지어는 ‘꼰대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들에게 교회는 따뜻한 공동체가 아니라 답답한 제도처럼 인식된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19세부터 34세까지 약 1000만명의 청년 중 50만 명이 ‘고립·은둔형 청년’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외롭고, 방향을 잃은 세대가 청년세대다.
이들을 품고 위로할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는 그들에게 가장 먼 공간이 됐다. 얼마 전, 국민일보 기사에서 ‘양평동 다섯 교회가 연합해 청년을 위한 반찬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봤다. 나는 성결교회 컨퍼런스 강연에서 그 사례를 소개했는데, 여러 목회자들이 ‘그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교회가 진정성 있게 젊은 세대를 돌보는 모습이 드물다는 뜻이다.
‘2026 한국교회 Z세대 트렌드’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8명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기독교인 청년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83%가 “없다”고 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결국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었다는 뜻이다.
교회의 본질은 관계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관계적 삶’과 ‘성육신적 삶’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할 때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교회, 따뜻하게 관계 맺는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박성민 목사=지금까지의 논의가 주로 ‘교회를 떠난 청년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나는 ‘아직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 역시 위태롭다. 믿음을 갖고 있지만, 정체성과 소속감, 사명감이 분명하지 않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체성이 불분명하면, 자신의 역할도 불분명해진다.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 이때 이단들이 파고든다. 이단은 교회 밖의 비신자를 전도하지 않는다. 이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한다.
CCC에선 간사들이 학생들을 코치하며 ‘주도적 사역’을 하도록 돕는다. 젊은이들은 스스로 주도하고 참여하길 원한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가르치고 통제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젊은이들은 ‘왜 믿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 질문에 교회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나는 요즘 학생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목사님, 기도 시간을 더 늘려주세요.” 젊은이들은 오히려 신앙에 목마르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교리와 전통, 형식 속에 머물러 있다. 교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는 더 이상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이제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미션 처치(Missional Church)가 일어나야 한다. 기존 교회는 스스로 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대신 그 옆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교회들이 세워져야 한다. 젊은 세대가 직접 세우는 교회,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구현하는 공동체가 등장해야 한다고 본다.
△최 박사=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고통이 깊을수록 종교성을 찾는다. 이 점에서 교회는 특히 청년 세대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지금 청년들의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불안과 직업의 불안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일자리는 주니어급, 즉 젊은 세대의 일자리다. 최근 통계를 보면 시니어 일자리는 크게 줄지 않는다. 오히려 AI는 초년생과 청년층이 맡던 일을 대체한다. 앞으로 4~5년 안에 청년 세대가 겪을 가장 큰 고통은 ‘일자리의 상실’이다.
이 시점에서 교회는 현실적 도움을 고민해야 한다. 청년의 고통이 커질수록, 교회가 그 문제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복음의 설득력은 더 약해진다. 교회가 이 시기를 놓친다면, 청년들의 교회 이탈은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영적 위기이자, 동시에 사회적 위기다. 교회는 이 문제를 ‘비상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인호 목사=20대 중반인 우리 막내딸 얘길 나누고 싶다. 딸은 큰 고통을 겪은 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날 이후 딸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아빠도 죄인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됐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빠에게 시험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느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다음세대는 기성세대를 이해하게 된다. 결국 복음의 본질은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이다. 복음이란 인간의 도덕적 행위나 교리의 틀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변화다.
팀 켈러는 ‘탕자 비유’에서 형과 동생의 관계를 통해 오늘날 교회의 문제를 드러낸다. 형은 의롭고 정직했지만, 동생을 배척하고 미워했다. 오늘날의 기성세대가 그 형과 비슷하다. 청년들은 그런 기성세대를 보며 복음을 오해한다. 그들은 교회가 ‘사랑과 정의, 아름다움의 공간’이 아니라, 판단과 배타의 공간으로 느낀다.
기독교는 본래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힘이었다. 노예해방의 윌버포스, 인권운동의 마틴 루서 킹, 이런 인물들이 모두 복음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점점 종교화되고 있다. 나는 성령의 부흥 만큼 ‘복음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복음의 본질이 회복돼야 한다.
기성세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통’이다. 대화를 하면 서로 다른 진영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미워하지 않으면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 사회는 획일적이지 않다. 서로 다르고, 갈등하고, 때로는 비극의 틈에 선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듣고 이해한다면, 다양성 속에서 어우러질 수 있다. 기성세대의 문제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그 점에서 가장 큰 괴리를 느낀다. 교회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김형근 목사=과거 교회성장연구소에서 사역하며 수많은 목회자들을 인터뷰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미래 목회의 다섯 가지 핵심이 있다. 나는 이것을 ‘5P’라고 부른다.
첫째는 ‘Presence’(임재)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둘째는 ‘People’(사람)이다. 예수의 제자를 세워야 한다. 교회의 목표는 교세 확장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를 세우는 일이다. 셋째는 ‘Power’(능력)다. 성령의 두나미스, 곧 능력이 임할 때 성도는 세상을 향해 담대해진다. 성령이 교회를 통해 역사하실 때, 미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넷째는 ‘Purpose’(목적)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공동체의 아픔을 돌보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는 ‘Plan’(계획)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세대마다 다른 전략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MZ세대 다음에는 알파세대, 베타세대, 감마세대가 온다. 그러나 5P를 갖춘 교회는 어떤 세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 축을 붙잡을 때, 한국교회는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박명룡 목사=코로나 이후 교회는 좋은 일을 해도 신뢰받지 못하게 됐다. 왜그럴까. 서구 교회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학문 세계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잃었고’ ‘정치 영역에서 기독교적 관점을 가진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했으며’ ‘언론 영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언론인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문제는 한국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에서 일하는 크리스천이 너무 적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해결책은 ‘탑다운(Top-down)’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그랬듯, 기독교는 지성인을 세우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 예수회는 귀족과 영주들에게 지성 교육을 시켰다.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하는 리더를 키웠기 때문이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인스티튜트나 블랙스톤 펠로우십은 석·박사급 인재를 선발해 2~3주간 집중 교육을 한다. 항공료와 장학금을 지원하며, 각 분야의 크리스천 리더를 양성한다.
이런 구조적 리더십 훈련이 한국교회에도 필요하다. 정치 법조 언론 학문 등 각 영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살리는 길이다.
△남 목사=기성세대는 MZ세대를 두고 “이기적이고 예의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다. 다만 젊은 세대는 그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세대의 솔직함은 교회가 귀 기울여야 할 신호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진정성’이 최고의 가치다. 청년들은 꾸밈없는 진심을 원한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교회가 너무 많은 조건과 규범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기 전에 실천을 강요받았다.
우리 교회는 문턱을 낮췄다. ‘복음을 듣는 것이 먼저이고, 행함은 그다음이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랬더니 청년들이 마음을 열었다. 오히려 “이런 예수님이라면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반응했다. 복음을 진심으로 느낀 청년들은 친구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복음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 목사=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츠빙글리의 교회, 그로스뮌스터교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은 종교개혁의 상징 같은 교회지만, 안에는 노인들만 있었다. 우리 부부가 가장 젊었다.
이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이게 한국교회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희망을 봤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는 목회자와 신학자, 청년 사역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교회가 여전히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교회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듣고, 함께 고민하고, 진정성 있게 복음을 붙잡는다면 하나님은 여전히 이 땅의 교회를 사용하실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열린 토론의 장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