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전사 소식만 기다리는 러시아 아내들…왜?

입력 2025-11-08 00:01
전쟁의 참전할 남성들에 관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는 VK(러시아판 페이스북)의 한 웹페이지. SNS 캡처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 미혼 남성과 위장 결혼을 한 뒤 남편의 참전 보상금이나 유족 위로금을 챙기는 신종 결혼 사기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러시아에서 참전 군인들을 표적으로 한 사기 행위가 이어지면서 이런 여성들이 ‘새로운 전쟁 사기꾼’ 혹은 ‘검은 과부’로 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령 세르게이 칸도즈코(40)는 2023년 10월 군인으로 입대하기 하루 전 엘레나 소콜로바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칸도즈코의 결혼 소식에 당황했다. 이전까지 신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사진, 반지 교환도 없었다. 결혼식은 하객이 단 한 명만 참석한 채 20분 만에 끝났다.

칸도즈코는 이후 전사했고, 사망 위로금 총액은 20만 달러(약 2억8900만원)는 아내가 받았다. 20만 달러는 러시아 평균 연봉의 거의 2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러시아 법원은 이 결혼이 상속 재산을 노린 사기 결혼이라고 판단했다. 결혼은 무효가 됐고 아내였던 소콜로바에게는 3000루블(약 5만3000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그는 남편이 입대하자마자 전 남편과 자녀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지난 2월에는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서 한 부부가 친척과 가족이 없는 46세 남성을 공범인 63세 여성과 결혼시킨 뒤, 입대 지원서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이후 남성은 전쟁에서 사망했고, 이들은 미망인 명의로 은행 계좌를 개설해 전사자 보상금을 신청하는 수법으로 800만 루블(약 1억4200만원)을 챙겼다.

이렇듯 ‘결혼 사기’로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SNS에는 이런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지까지 만들어졌다.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VK에는 ‘군인과의 데이트’, ‘견장(군복 입은 사람을 의미하는 은어)과의 데이트’ 등 복무 중인 남편감을 찾는 그룹이 수십개에 달한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최전방 마을인 차시브야르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수송 차량에 러시아 포로들이 탑승해 있다. AP뉴시스

러시아 정치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레오니드 슬루츠키 지유민주당 대표는 “전사한 영웅의 유가족을 돌보는 가장 신성한 가치를 짓밟는 괴물 같은 짓”이라며 “이들의 행위는 약탈 행위와 같다”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전사자 보상금을 노린 범죄에 피해를 입은 유가족을 대변했던 한 변호사는 “사망한 남편의 피로 이익을 얻으려는 여성들의 시도는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