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찰청이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불법 처방·복용한 의사와 환자 등 35명을 적발했다.
6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2023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사용기준을 위반해 체중 감량을 원하는 환자에게 장기간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의사 9명과 이를 복용한 환자 26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식욕억제제는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거나, 고혈압·당뇨 등 위험 인자가 있는 27㎏/㎡ 이상인 비만 환자에게만 처방할 수 있다. 총 처방 기간도 3개월을 넘을 수 없고, 다른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와 병용하면 안된다. 그러나 일부 의료기관은 명확한 진단명 없이 정상 체질량지수 환자들에게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용으로 약물을 장기간 처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약 18개월 동안 53회에 걸쳐 펜디메트라진(35㎎) 4452정을 처방받았다. 이는 식약처 권장량(1614정)의 2.8배에 달하는 과다 처방이다. 같은 기간 B병원에서 진료를 본 C씨 역시 34회에 걸쳐 5628정을 처방받았는데, 권장량(1635정)을 3.4배 초과한 수준이었다. 두 사람 모두 3개월 이내 단기 처방 원칙을 어기고 1년 반 이상 반복 처방을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일부 환자는 체중감량이 지연되자 권장 용량의 2~3배를 복용하거나 다른 약물과 함께 복용한 사례도 있었다.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장기간 상습 투약한 사례도 확인했다. 한 환자는 2018년 5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총 132회에 걸쳐 4356㎖를 투약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시술 목적이 아닌 단순 수면 유도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반복 투약으로, 의료용 마약류 관리기준을 위반한 사례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식욕억제제나 프로포폴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치료 목적 외 장기 복용할 경우 불면, 불안, 우울, 약물 의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식욕억제제는 비만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만 단기 처방돼야 하며, 반복 복용은 뇌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다른 약물 의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산경찰청은 식약처로부터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기관에 대한 수사 의뢰를 받고, 진료기록부와 조제 내역을 압수·분석해 불법 처방 사실을 확인했다. 이주만 부산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장은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은 개인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중독·의존 위험을 키운다”며 “내년 1월까지 집중 단속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