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보수 대법관도 트럼프 관세 권한에 회의적…궁지 몰리는 관세 정책

입력 2025-11-06 08:07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첫 심리가 열린 연방대법원 앞에서 5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첫 심리를 열고 관세 부과 권한의 적법성을 따졌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제한 없는 관세 부과 권한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나타냈다. 전 세계를 뒤흔든 트럼프 관세 정책의 운명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워싱턴DC의 대법원 청사에서 이번 관세 소송과 관련한 구두 변론을 개시했다. 정부 측 대리인과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과 민주당 성향 12개 주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차례로 나와 법정 공방을 펼쳤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오전에 시작된 변론 절차는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9명의 대법관은 트럼프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의회의 승인 없이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적법한지를 집중 심리했다.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날 보수 성향 대법관들도 행정부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 닐 고서치 대법관은 이날 심리에서 헌법이 과세 권한을 의회에 준 점을 지적하며 “그건 반드시 지역 차원에서, 우리가 직접 선출한 대표들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역시 트럼프가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정부 측을 향해 “법령 어디에서든, 역사상 어느 때든 ‘수입 규제’라는 문구를 근거로 관세 부과 권한을 주장한 적이 있느냐”고 따졌다. 그는 구두 변론 후반부에 관세를 환급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이게 정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트럼프가 “어떤 제품이든, 어떤 나라든 어떤 기간이든” 간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대한 권한이지만 그 권한의 근거로 제시된 법률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세금 부과는 의회의 권한이지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다”며 “관세가 세금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관세는 세금”이라고 말했다. 이 “헌법은 시민으로서 내가 어떤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경우, 그 부담이 반드시 의회를 통해 만들어진 법안을 통해 이뤄지도록 구조화돼 있다”며 “상·하원 양원이 모두 동의하고, 대통령까지 결정하지 않는 한 세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대다수의 대법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대통령의 가장 큰 법적 시험에서 핵심 정책이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남발하는 점도 논란이 됐다. 트럼프는 관세와 이민자 추방 정책 등 다른 강경 정책을 쓸 때마다 ‘비상사태’를 동원했다. 이에 대해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결국 우리는 항상 비상사태에 있는 셈이다”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1심과 2심 모두 트럼프의 조치가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넘어선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르면 연말 내에 결론을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 등 ‘플랜 B’를 동원해 관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IEEPA만큼 광범위한 권한은 없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걷어온 관세도 환급해야 할 수 있다. 트럼프가 전날 “우리나라가 사느냐 죽느냐에 대한 것”이라고 대법원을 압박한 것도 관세 정책에 대한 위기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