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야드 원조 장타자’ 김봉섭이 돌아온다…제네시스 포인트 70위 막차로 내년 시드 획득

입력 2025-11-06 00:06
지난 2일 끝난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공동 5위에 입상해 제네시스 포인트 70위로 순위를 끌어 올려 내년 시드를 획득한 김봉섭. KPGA

‘원조 장타자’ 김봉섭(42·아이브리지)이 2년여만에 KPGA투어에 복귀한다.

김봉섭은 지난 2일 경기도 여주시 페럼클럽(파72)에서 끝난 KPGA 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총상금 10억 원)에서 공동 5위에 입상했다. 이로써 제네시스 포인트를 70위로 끌어 올린 김봉섭은 내년 시드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이 대회 전까지 김봉섭의 제네시스 포인트 순위는 93위였다. 상위 70위까지 주는 내년 시드 획득이 불투명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추천으로 출전 기회를 잡은 김봉섭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은퇴한다’라는 배수진을 치고 경기에 임했다.

공동 20위였던 3라운드까지만 해도 그의 은퇴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대부분 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오버파 스코어를 쏟아낼 때 그는 1언더파 71타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 순위는 15계단 상승한 공동 5위였다.

16번 홀(파3) 버디가 결정적이었다.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5m 가량의 버디 퍼트만 성공했더라도 연장전에도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가장 아쉬운 대목은 9번 홀(파5) 러프에서 친 두 번째샷 실수가 빌미가 돼 범한 더블보기다. 스포츠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1타 차 생애 첫 우승이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천신만고 끝에 내년 시드를 획득한 김봉섭은 6일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테디밸리골프앤리조트(파72)에서 개막한 시즌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도 자력으로 출전하게 됐다. 이 대회는 제네시스 포인트 상위 70명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지는 일종의 ‘왕중왕’ 성격이다.

3년만에 이 대회에 출전한 김봉섭을 만나 길었던 슬럼프의 원인과 부활의 계기, 그리고 향후 목표에 대해 들어 보았다.
42세의 나이에도 평균 306야드의 장타를 날리는 '원조 장타자' 김봉섭의 호쾌한 드라이버샷. KPGA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320야드 원조 장타자의 부진은 그를 아끼는 팬들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2006년에 KPGA투어에 데뷔한 김봉섭은 성적 부진으로 2024년과 올해 정규투어 시드를 잃었다. 주니어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다져진 단단한 하체에 뿜어 나오는 평균 320야드 이상의 장타를 날린 그의 모습을 작년에는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시드를 잃은 뒤 2부인 챌린지 투어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골프가 싫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이제 7살이 된 아들(재이)과 보내는 시간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드라이브 비거리 1위에 올랐고, 올해도 평균 306야드를 기록하며 여전히 ‘원조 장타왕’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랬던 그가 올해는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다시 뛴다는 생각으로 챌린지투어는 3회 대회부터 새롭게 출발했다. 또 월요 예선과 추천으로 정규투어 7개 대회에 출전했다. KPGA선수권대회 공동 10위, 렉서스 마스터즈 공동 5위 등 2차례 ‘톱10’ 입상이 있다.

김봉섭은 “샷감이 전혀 올라 오지 않아 솔직이 그만 두고 싶었다”라며 “하지만 아직 비거리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프로님과 올해까지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며 설득하는 후원사 대표님의 완곡한 만류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러다 월요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KPGA선수권대회에서 공동 10위에 입상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고 골프에 흥미가 더 생겼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월요 예선을 위해 8일간에 걸쳐 손수 운전해 1061km를 이동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당시 그는 경남 합천 아델스코트에서 열린 2부 대회 예선전과 본선,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열린 KPGA 선수권 월요 예선, 그리고 전북 군산시 군산CC에서 개최된 군산CC오픈 월요 예선에 참가했다.
KPGA투어 시즌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둔 5일 공식 연습 라운드에서 동반자들과 선전을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봉섭(왼쪽부터 장희민, 이동환, 김봉섭, 문경준). KPGA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다. 그의 기나긴 슬럼프는 오판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2023년에 그의 샷은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샷감이 절정이었다. 퍼트만 따라 주었더라면 생애 첫 우승은 말할 것도 없고 시즌 멀티플 우승도 가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늘 퍼트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솔루션이랍시고 생각한 게 퍼터 무게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브룸스틱 퍼터까지 사용하게 됐다. 그러나 별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퍼팅 지수가 더 나빠졌다.

그러다 작년 태국 동계 전지 훈련 때 우연히 들렀던 프로샵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구세주를 만났다. 테일러메이드사의 스파이더 퍼터였다.

김봉섭은 “처음 퍼터를 잡았을 때 셋업이 잘 나와 사용해 보았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라며 “당시 사용중이던 퍼터와 비교해 보니 20g이 더 가벼웠다. 그래서 과감하게 퍼터를 교체했다. 현재도 사용중인데 아주 만족스럽다”고 한다.

#자력으로 시드를 획득하지 못하면 레슨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렉서스 마스터즈 때 오기가 더 발동했다. 처음 투어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태껏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심적 프레셔도 엄청났다.

김봉섭은 “6위 이내면 내년 시드를 획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최종 라운드에 임했다”며 “심적 압박이 당연히 심했다. 16번 홀 버디 이후에는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다행히도 18번 홀 세컨샷 이후에 프레셔가 풀렸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극적으로 70위에 들면서 가장 기뻐한 사람은 일본프로골프투어 활동 시기였던 2016년에 결혼한 아내였다. 그는 “아내와 ‘자력으로 시드 못받으면 레슨 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걸 어겨서 기쁘다”고 웃으며 “아내가 여러 사람 피 말리지 말고 잘하라고 격려했다”고 귀띔했다.

시드 획득이 확정된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고마운 분들은 또 있다. 올해로 20년째 스윙을 봐주고 있는 김형민프로, 후원사인 엘리야 병원 원장, 그리고 펜클럽 ‘김봉섭 서포터즈’ 회원들이다. 특히 후원회 회장과 부회장은 렉서스 마스터즈 대회 기간 내내 현장에서 김봉섭을 응원하며 힘을 보탰다.
2013년에 타계한 어머니와 교감을 위한 버디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김봉섭. KPGA

#하지만 그 순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2013년 1월에 황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니였다. 버디를 하고 난 뒤 손가락을 입에 댔다 뗀 뒤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가리키는 세레모니는 김봉섭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그리운 어머니와의 교감을 위한 아들의 사모곡인 셈이다.

김봉섭은 “생전에 우승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게 항상 마음에 걸린다”라며 “돌아가시고 5년여가 지난 2018년에 꿈에 나타나셨는데 아내가 아들을 임신하는 태몽이었다. 너무도 그리운데 야속하게도 어머니는 그 때 딱 한번 꿈에 보이시고 다시는 아들을 찾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선배 김재호프로님의 우승에 동기부여가 됐다는 김봉섭의 목표는 뭘까. 그는 “오랫동안 기억되는 선수”라고 했다. 이번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투어 데뷔 17년여만에 생애 첫 승을 거둔 김재호(43·우성종합건설)를 비롯해 여전히 투어에서 경쟁력이 있는 박상현(42·동아제약), 최진호(41·코웰), 문경준(43·NH투자증권) 등 40대 선후배들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더 강해진다.

그는 “렉서스 마스터즈 연장전에 40대 2명, 30대와 20대 1명씩 총 4명이 나갔는데 가장 연장자인 (김)재호 형이 우승했다”라며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봉섭은 2부인 챌린지투어 생활을 통해 골프를 대하는 자신의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 했다. 그는 “20대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주로 조언을 해주는 편이지만 그들로부터 느낀 점도, 배운 점도 많았다. 그 시간이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서귀포=정대균골프선임기자(golf5601@kmib.co.kr)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