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고 있나?” 자본주의 ‘수도’ 뉴욕에서 사회주의자 시장 탄생

입력 2025-11-05 15:45
미국 뉴욕 시장에 당선된 민주당 조란 맘다니 후보가 4일(현지시간) 브루클린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 미국 뉴욕에서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조란 맘다니(34) 민주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이번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없던 주 하원의원이었던 맘다니는 아파트 임대료 안정화와 무상버스 등 파격적인 진보 공약으로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진보 진영뿐 아니라 기성 정치권 전반에 파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맘다니는 4일(현지시간) 치러진 뉴욕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선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와 공화당 커티스 슬리와 후보를 큰 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91% 개표 기준으로 50.4%를 득표해 과반을 차지했다. 쿠오모 후보는 41.6%, 슬리와 후보는 7.1%에 그쳤다. 뉴욕 시민 200만명 이상이 투표했는데, 맘다니는 1969년 시장 선거 이후 처음으로 100만표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됐다.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맘다니는 최초의 무슬림 뉴욕 시장, 19세기 이후 최연소 시장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맘다니는 이날 선거 승리 연설에서 “나는 아무리 나이 들려고 해도 여전히 젊다. 나는 무슬림이고 민주적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한 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내년 1월 1일 제 111대 뉴욕시장으로 공식 취임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고음 발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극단적 보복 성향의 2기 행보가 처음으로 선거에서 제동이 걸렸다”며 “유권자들이 중요한 선거에서 그에 대한 강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맘다니 역시 연설에서 트럼프를 겨냥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당신이 보고 있다는 거 안다. 네 마디만 하겠다. 볼륨을 더 키워라(Turn the volume up)”라고 말했다. 그는 열광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이 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우리 중 누구라도 꺾으려면 우리 모두를 상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선거 전날까지도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며 공화당 후보 대신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무소속 쿠오모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뉴욕은 트럼프의 고향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직접 선거전에 나서 막판 공세를 펼쳤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정치 신인’에게 정치적 일격을 당한 셈이다.

맘다니는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단속 정책도 비판했다. 그는 “오늘 밤을 기점으로 뉴욕시는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맘다니는 “이 힘은 여러분의 것이다. 이 도시는 여러분의 것”이라고 말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민주당은 뉴욕시장뿐 아니라 주요 선거에서 승리했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에비게일 스팬버거 전 연방 하원의원이 공화당 후보인 윈섬 얼-시어스 부지사를 꺾었다. 현직 주지사 글렌 영킨은 공화당 소속이어서 민주당이 주지사를 탈환하게 된 셈이다. 버지니아 역사상 여성 주지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 마이키 셰릴 연방 하원의원이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의 잭 치타렐리 전 뉴저지주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두 주지사 선거 모두 민주당 후보가 완승하면서 지난해 대선 참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민주당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트루스소셜에 “‘트럼프가 투표용지에 없었고, 셧다운이 있었던 것이 오늘 밤 공화당이 선거에서 진 두 가지 이유였다’라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말했다”라고 적었다. 이번 선거는 자신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