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네오콘’(신보수주의)의 거두이자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9·11테러에 대응해 ‘테러와의 전쟁’을 설계한 딕 체니 전 부통령이 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4세.
CNN과 폴리티코에 따르면 유족은 이날 성명을 내고 “체니 전 부통령이 폐렴과 심장·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며 “61년간 함께 살아온 부인 린 여사, 두 딸을 포함한 가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순간에 곁을 지켰다”고 밝혔다.
체니 전 부통령은 1941년 1월 30일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났지만 와이오밍주의 산골 마을 캐스퍼로 이주했다. 와이오밍주에서 고등학생 때 린 여사를 만나 1964년 결혼했다.
와이오밍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체니 전 부통령은 1978년 와이오밍주 초선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내리 6선에 성공했다. 1989년 조지 H 부시 행정부에선 국방장관을 지내며 걸프전을 지휘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아들 부시’로 불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2001년부터 8년간 부통령으로 연임하며 막강한 권력도 휘둘렀다. 2001~2006년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 2005~2009년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모두 체니 전 부통령이 발탁한 인사다.
CNN은 체니 전 부통령에 대해 “미국의 현대기에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자 ‘테러와의 전쟁’을 설계한 인물”이라며 “그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하거나 이슬람 무장세력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근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체니 전 부통령은 미군의 테러 용의자 조사에서 물고문과 수면 박탈 등 ‘강화 심문 기법’을 옹호했는데, 유엔과 미 상원은 이를 고문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2015년 CNN 인터뷰에서 강화 심문 기법에 대해 “그때는 옳은 일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강경 보수 행보를 펼쳤던 체니 전 부통령은 공화당 내 네오콘을 무력화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체니 전 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고인의 장녀인 공화당 소속 리즈 체니 하원의원은 해리스 후보의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체니의 죽음은 국가적 손실이자 친구들에게 슬픔”이라며 “역사는 그를 당대 최고의 공직자 중 한 명으로, 또 애국자로 기억할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