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도회장’에 美기업 기부 줄줄이…특혜 의혹 논란

입력 2025-11-04 17:08 수정 2025-11-04 17:22
백악관이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공개한 연회장 조감도.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억 달러를 투입해 강행하고 있는 백악관 연회장 건립에 유수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기부금을 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연방정부의 제재나 조사를 받는 기업이 포함돼있거나 연방정부 계약을 따낸 기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등 특혜를 받은 정황이 짙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부 감시단체 퍼블릭시티즌이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한 30여개 기업·개인 기부자는 최근 5년 동안 2790억 달러(약 385조원) 규모의 연방정부 계약을 수주했다. 같은 기간 이들 기업은 16억 달러를 정치 자금 및 로비활동에 지출했다.

기부자 명단에는 구글, 컴캐스트, 록히드마틴 등 기술·금융·방산 분야 글로벌 대기업들이 포함돼있다. WP는 세 기업 만이 논평 요청에 응했지만, 구체적인 기부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후원자 만찬에서 “일부는 2500만 달러(약359억원)를 내겠다고 했다”고 말한 사실을 언급했다.

공개된 기업 24곳 중 14곳은 트럼프 4기 행정부에서 연방정부의 제재를 받거나 제재 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 기업 중 한 곳인 아마존은 법무부로부터 근로자의 부상 사실을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애플은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지난 9월 노동권 침해 혐의를 철회한 바 있다.

퍼블릭시티즌의 로버트 와이즈먼 공동대표는 “이들은 연방정부와 거대한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들”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호의를 얻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연회장 리모델링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건축적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부하는) 수백만 달러는 (기업의 이해관계와 걸린) 조달·규제·집행 결정에 드는 수십억 달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WP의 논평 요청에 응한 세계 최대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의 대변인은 “우리는 모든 행정부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미군과 동맹국들이 진화하는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최첨단 기술을 지원한다”며 “연방정부와 모든 거래는 관련 법규를 준수한다”고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백악관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민간 기부를 통해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였다는 입장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해충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세금으로 (연회장을) 지었다면 납세자의 부담을 문제 삼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연회장 프로젝트의 기부자들은 위대한 미국 기업과 관대한 개인들로, 이들은 ‘국민의 집(백악관)’을 다른 세대를 위해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에 와이즈먼 대표는 “공공건물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져야 하며 미국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의회 대표를 통해 어떤 건물이 지어지고 어떻게 관리되는지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며 “백악관이 ‘국민의 집’이라면 대통령의 개인적 사업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기업이나 억만장자 기부자의 기부금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돼야 한다”고 맞섰다.

퍼블릭시티즌은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를 인용, 트럼프 행정부의 연회장 모금팀이 기부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약정서를 배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공개를 원하지 않는 기부자는 익명으로 남을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소속 아담 시프 상원의원(캘리포니아주)은 최근 백악관의 연회장 자금 조달 내역과 기부자와의 거래 등을 포함한 회계 보고서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간사 베니 톰슨 의원(미시시피주)은 “이 사업에 대해 정보를 얻으려 해도 어느 기관을 찾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 바 있다.

WP가 ABC뉴스와 함께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6%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 윙(동관)을 철거하고 연회장을 짓는 데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