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LoL 월드 챔피언십에서 갑자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챔피언이 있다. 문도 박사다.
지난 31일(한국시간) 중국 상하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5 LoL 월드 챔피언십 8강전, T1의 ‘오너’ 문현준이 마지막 5세트에서 애니원스 레전드(AL) 상대로 꺼내 값진 승리를 거뒀다. T1은 이날 역전승으로 준결승에 올랐고, 이어 TOP e스포츠(TES)까지 꺾으면서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런데 문현준은 AL전 이틀 뒤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사실 문도 박사는 한 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픽이었다. 밴픽에서 손해를 볼까 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골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실 스킬도 정확히 몰라서 밴픽하는 동안 스킬을 읽어보고 임재현 코치님께 룬과 아이템 트리를 물어봤다”고 귀띔했다.
어쩌다가 월드 챔피언십 디펜딩 챔피언이 백척간두의 5세트에서 숙련도가 없다시피 한 챔피언을 골랐을까. 그만큼 짧은 기간에 챔피언의 티어가 급격히 올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도 박사는 오랫동안 프로 대회, 특히 LCK에서 철저히 외면받아온 챔피언이다. 문현준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열심히 연습하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올해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한 팀과 선수들도 이 챔피언의 성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이렇게 티어가 갑작스럽게 오를 거라고도 예상치 못했던 셈이다.
문도 박사는 이번 대회에서 4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왜 갑자기 월드 챔피언십의 숨겨진 ‘꿀통’이 됐을까. 현재로서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다만 ‘메타 선도자’ G2 e스포츠가 LCK·LPL 팀들과의 스크림에서 문도 박사를 써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G2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먼저 문도 박사를 쓴 팀이다. 이들은 스위스 스테이지 플라이퀘스트전, 이어 TES와의 8강전에서도 문도 박사를 정글러로 써서 승점을 따냈다. 과거 지역 리그에서도 쓴 적이 있다.
G2 딜런 팔코 감독은 지난 30일 TES에 져 대회 8강에서 탈락한 직후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원래는 서양 팀들이 스크림에서 고전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정말 잘 돼서 기대감이 높았다. 최근 2주간의 스크림 결과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8강전이 시작되기 전 만난 한 LCK 선수는 “G2가 스크림에서 꽤 강했다. TES를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LCK 팀들이 그들과의 스크림에서 문도 박사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을 고려하게 된다.
문도 박사 활용에 대한 LCK 팀들의 고민은 8강전 전부터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5세트에서 즉흥적으로 문도 박사를 골라 ‘별의 순간’을 만든 T1과 달리 KT는 젠지와의 준결승전 전부터 문도 박사의 성능을 고평가하고 준비해서 승점을 따냈다. KT 고동빈 감독은 젠지전 직후 전화 인터뷰에서 “젠지전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잘 다루는 챔피언들도 갈고닦았지만, 대회 메타에 맞춰 등장하기 시작한 챔피언들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 감독은 “문도 박사는 LEC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챔피언이다. 또 ‘커즈’ 문우찬이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면서 “사실 문도 박사는 선수 시절이던 2018년 그리핀과의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결승전 당시에 내가 준비했던 픽이다. 문도 박사의 성능이 좋다는 건 그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월드 챔피언십은 약 1달 동안 같은 패치 버전으로 치러지지만 그동안 메타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매일 조금씩 바뀐다. 2020년 플레이-인 스테이지 이후 종적을 감췄던 트위치·라칸, 2022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하이머딩거 등 사례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면 2025년, 가장 중요한 청두의 시험 문제는 T1·KT 선수단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풀어온 기출문제집과 크게 다를까, 같을까.
현재로서는 문도 박사가 피어리스 드래프트의 1세트부터 골라야 하는 챔피언은 아닌 듯하다. T1은 5세트에, KT는 4세트에 뽑았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문도 박사를 골라야 할까. 팔코 감독은 “상대 조합의 딜이 부족할 때 굉장히 좋은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팔코 감독은 “특히 키아나 상대로 정말 좋다. 라이너들이 라인전을 이기고 잘 성장한 후부터는 문도 박사가 키아나보다 더 빠르다. 키아나와의 일 대 일도 이길 수 있어서 키아나 상대로 좋은 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코 감독의 해석이 정확하다면, 결승전에 나서는 두 팀은 1세트급 챔피언으로 평가받는 키아나의 티어까지 다시 고려해야 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