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17. 양자역학과 기독교적 사고의 상보성 –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선정의 함의

입력 2025-11-03 14:00 수정 2025-11-03 14:00

2024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축제 같은 이벤트였다.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소설가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는 침체된 분위기 속에 보도되었다. 과학 분야 노벨상의 높은 벽을 다시금 실감하는 한해였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에서는 꾸준히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일본의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의 뒤처진 기초과학 수준에 실망감을 표하는 논조의 의견들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이미 1949년부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고, 특히 2000년 이후로는 14회에 걸쳐 노벨 화학상, 물리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0년 이후로 과학부문 노벨상에서는 일본인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해가 더 적다는 소리다. 올해는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 그리고 화학상 수상자로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과학부문 노벨상을 두고 국내 언론이 일본에 대해 질투심과 자격지심을 보이는 것은 식민지배 역사를 유념한 한국인들의 감정을 반영하고 자극하는 것이긴 하지만, 다소 비상식적인 면이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한 국가의 제반 기초과학 연구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단지 대학 시스템과 연구지원금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국민 전반의 기초과학에 관한 관심, 사물의 원리에 관심을 갖는 일상적이고 이성적인 생활 태도, 그리고 생애 끝날까지 과학적 원리를 파헤치려는 삶의 가치를 정립한 연구자들의 존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기초과학 여건은 이런 조건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희망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도 없다. 제반 여건 마련과 국민 전체의 확실한 인식 변화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수상을 노려볼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실망할 자격조차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난 2024년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는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들, 특히 딥러닝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 여럿 포함되었다. 딥러닝의 창시자 제프리 힌턴의 연구업적은 사실 그 자체로서는 물리학적 공로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물리학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물리학계에 커다란 공헌을 했기에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데이빗 허사비스 역시 화학 연구에 직접적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구글 딥마인드의 발전된 딥러닝 기술이 화학계에 괄목할만한 연구 혁신을 일으켰기에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렇게 작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명단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라는 현실을 반영하였다면,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명단은 양자역학의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들도 인공지능 발전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존 클라크, 미셸 H. 드보레, 존 M. 마티니스, 이 세 사람은 1980년대 거시적 양자 터널링 연구를 함께한 이들이다. 이 가운데 드보레와 마티니스 교수는 현재 구글 퀀텀 AI에 근무하며 양자 컴퓨터 기반 인공지능 구현과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중이다.

거시적 양자 터널링이란 간단히 말해서 이전에 미시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양자 터널링(아원자 입자가 충분한 에너지 없이도 에너지 장벽을 통과하는 현상, 고전역학에서는 불가능)이 거시세계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 현상이 거시세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인의 공로다. 사실 현재까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질서는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기는 해도 매우 이질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계선이 어디인지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니 대통합 이론(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물리학적 질서를 하나로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정립 역시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그렇지만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인은 제한적인 상황(절대영도에 초전도체 회로가 갖추어질 때)에서 거시세계의 전류(아원자 입자인 전자의 집합체)도 전자처럼 충분한 에너지 없이 에너지 장벽을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해냈다. 이것은 미시세계의 질서, 특히 코펜하겐 학파의 대표자 가운데 하나였던 막스 보른(Max Born)이 제시한 양자 중첩 원리가 거시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증거로 인정된다. 미시세계의 전자와 마찬가지로 거시세계의 전류 역시 에너지 장벽 양쪽에 중첩되어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이 원리는 양자컴퓨터 개발의 핵심 요인이다. 현재의 반도체 기반 컴퓨터가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중첩해서 표현하지 못하고 오로지 순차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두 상태를 중첩해 표현함으로써 컴퓨터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다만 현재 양자컴퓨터는 연구실에서 시험적으로 개발되었을 뿐 아직 상용화될 정도의 실용적 성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양자컴퓨터 개발의 주된 동향은 초전도체를 활용하는 방식인데 이는 절대영도를 유지해야 하는 조건이 따라붙기 때문에 실용적 개발이 대단히 어렵다. 향후 상온 초전도체가 실제 개발되거나 아니면 초전도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이온 트랩, 광자 기반 등)의 양자컴퓨터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 그 실현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 어쨌든 현재 물리학계는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세상을 하나씩 혁신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바로 이 양자역학의 힘에 대한 헌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고전역학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양자역학 발전이 우리의 삶에, 그리고 기독교적 실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양자역학과 기독교적 삶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며 그 연관성은 우리 신앙과 신학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신앙을 약화시키고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하는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영국 성공회 자세였던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은 2007년 발표한 ‘양자역학과 신학: 예상치 못한 친연성’(Quantum Mechanics and Theology: An Unexpected Kinship)이라는 저서에서 양자역학이 기독교 신앙 변증과 신학 발전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논증한다. 닐스 보어(Niels Bohr)의 상보성 원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불확정성의 원리, 그리고 특히 막스 보른의 양자 중첩 원리,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의 핵을 이루는 이 세 원리의 요점은 결국 미시세계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파동과 관측된 입자의 존재적 동일성이다. 분명 파동과 입자의 상태는 현상적으로 배타적이다. 입자로 관측되는 순간 파동 상태는 슈뢰딩거 방정식 계산을 따라 붕괴되므로 둘이 동시에 관측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파동 상태와 입자 상태는 분명 존재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서로 배척되는 것이 명백히 존재적으로 하나인 상태는 놀랍게도 기독교 신학에서, 특히 니케아 공의회(325년)로부터 에베소 공의회(431년)를 거쳐 칼케돈 공의회(451년)까지 이어진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론 논쟁에서 중대하게 다뤄진 논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 삼위의 일위로서 성자이며 완전하게 보존된 채 결합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는 이 믿음은 기독교 신론과 구원론의 핵심 요소로서 이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기독교인의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칼케돈 공의회의 최종 결론이었다.

당시 아리우스파(니케아 공의회 당시 성자의 영원성, 그리고 성부, 성령과의 동일실체설을 부정한 이들)와 네스토리우스파(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서로 분리된 채 연합되어 있었다고 주장한 이들, 예수의 인간성과 인간적 경험들은 삼위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는 모두 신성이 인간적인 것에 의해 결코 침해될 수 없는 본성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오래된 신플라톤주의적 영육 이원론에 기반을 둔 견해였다. 니케아, 에베소,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는 결국 이들의 견해를 이단으로 판결하고 성 삼위의 동일실체, 그리고 성자의 신성과 인성의 보존된 합일을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인으로 확정했다.

과거 다분히 정치적으로 정해진 이 교의에 대해 오랜 세월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근대 후기, 다비드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의 역사적 예수 연구와 신칸트학파(neo-Kantian schools)의 도덕적 모범으로서 인간 예수 탐구,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안티크리스트’(The Antichrist) 속 초인으로서의 예수 해명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신성을 전면 배제하고 오로지 한 모범적인 인간으로서 예수를 조명하는 학문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는 모두 궁극적으로 신성과 인성의 ‘중첩’ 상태를 수긍하지 못하고 오로지 한 측면,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측면만 바라보려는 근대 연구자들의 세계관과 인간 이해의 한계를 보여준다.

폴킹혼은 양자역학이 이런 일방적 사고방식을 회의하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사상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성 삼위가 서로 개별 위격이면서도 존재적으로 하나라는 가르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가르침은 상보성의 원리나 중첩 원리에 따르면 전혀 불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양자역학이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을 직접 입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양자역학 세계관이 일상화된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 삼위의 일위로서, 하나님으로서 믿는 사고방식이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서로 배척하는 것, 반대되는 것이 하나를 이루는 변증법적 원리는 이제 철학이나 신학에서만 통용되지 않고 거시적 현실 세계의 밑바탕을 이루는 미시세계의 원리로서도 유효하다. 게다가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인이 입증한 것처럼, 아주 제한적인 특정 조건에서는 거시세계의 현상 또한 중첩 원리를 따르기도 한다. 즉 향후 양자역학적 세계관이 더욱 일상화된 세계, 그리고 미시세계의 원리가 점차 거시세계 원리와 통합되어가는 시대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사고구조가 결코 모순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폴킹혼은 큰 기대감을 표명한다.

폴킹혼은 물리적 원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아퀴나스식의 존재 유비 가설을 확고하게 믿는다. 세상은 무작위적으로, 우연에 의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적 섭리로 창조된 것이라는 데 대해 기독교 성직자로서만이 아니라 물리학자로서도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는다. 사실 이 존재 유 비적 세계관은 무수한 철학자와 과학자들에 의해, 심지어는 칼 바르트 같은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서도 반박을 당해 왔지만 그런데도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양측의 오묘한 질서는 여전히 이 세계를 설계한 지적인 창조주의 존재를 찾도록 유인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는 사도 바울의 언명이 양자역학의 진보를 힘입어 더 실재적으로 체감되는 듯하다.

폴킹혼이 기대한 것처럼 우리 역시 향후 양자역학 발전 실태에 기대를 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양자역학에도 여러 한계가 있다. 거시적 양자 터널링을 입증한 것은 대단한 과학적 공로다. 하지만 이는 거시세계를 이루는 물리적 현상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거시세계의 현상 가운데 대부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그의 말년에 고집스럽게 주장한 것처럼, 아직 미시세계의 원리만 가지고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대통합 이론의 정립은 우리 인류의 끝날까지 이루어지지 못할 꿈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 발전이 우리 인류의 세계이해 방식에 지반을 뒤흔드는 변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기독교 신앙 변증에 상당히 우호적인 학문적, 사상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와 기독교 신앙의 상보성에 대한 의식 확산을 위해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과학기술 발전 동태를 주시하고 이해하는 데 더욱 힘쓰려는 의식 개선이 교회 내에서도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