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모기 제주서 발견…“기후변화 영향”

입력 2025-11-03 06:21 수정 2025-11-03 09:31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일러스트입니다.

열대지방에 주로 서식하며 웨스트나일열 등 감염병을 매개하는 모기인 ‘열대집모기’가 국내에서도 발견됐다.

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제주 지역에서 채집한 모기 중 이전에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열대집모기가 새롭게 발견됐다. 채집은 감염병 매개체 감시를 위해 이뤄졌다.

열대집모기는 집모기류(Culex spp.)의 하나다. 국내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모기인 ‘빨간집모기’와 형태적으로 매우 유사하지만 보다 따뜻한 열대 및 아열대 기후 지역에서 서식한다.

보건학자 주인호 박사의 1956년 논문 ‘한국산 모기의 분류’엔 이 모기가 한국 모기 중 하나로 기록돼 있으나, 표본이 남아 있지 않고 이후 70년 가까이 한 차례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이한일 연세대 명예교수는 2003년 논문에서 “(1956년 논문 이후) 40년 넘게 많은 연구자가 열대집모기 성충이나 유충 표본을 단 하나도 채집하지 못했다”며 한국 모기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국내에서 열대집모기의 존재가 명확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 내 여러 지점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뤄 이미 제주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질병청은 설명했다.

이희일 질병청 매개체분석과장은 “유입 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가 열대집모기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라며 제주도 외에 다른 육지 지역으로도 진출했는지는 내년 감시 시즌에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대집모기는 웨스트나일열 등 감염병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웨스트나일열은 드물게 뇌염, 수막염으로도 이어지는 바이러스 감염병이다. 유럽에선 지난해 19개국에서 1436명의 환자가 나와 125명이 사망했다. 한국에선 3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2012년 아프리카 기니에서 감염돼 입국 후 확진 받은 사례 1건을 제외하곤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열대집모기가 국내에서 발견됐다고 웨스트나일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국내에 서식하는 빨간집모기와 지하집모기도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매개 모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모기에서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된 적은 없다.

이희일 과장은 “열대집모기가 이들보다 웨스트나일 매개 위험이 더 높다고 볼 근거는 없다”며 다만 “감염병 예방을 위해 감시해야 할 병원체 모기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모기 분류 전문가인 김흥철 박사(주식회사 유 기술연구소장)는 “50년대 주인호 박사의 연구도 유충을 우화시킨 깨끗한 표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상당히 정확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우리나라 기온이 높아지고 여행객도 늘어나면서 열대집모기가 새로 유입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새로운 종이 늘어나는 건 기후변화의 분명한 영향”이라며 특히 기온이 높고 해외 여행객 유입이 많은 제주도가 새로운 종 유입의 통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청 연구진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한 이번 조사 결과를 공식 학술지 ‘건강과 질병’을 통해 곧 공개할 계획이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