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디’ 곽보성이 생애 처음으로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 무대에 선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 역사에 남을 업셋으로. 지난 1년간 KT 롤스터를 이끌면서 2025년의 ‘선택받은 아이들’이 될 자격을 제 손으로 거머쥐었다.
KT는 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5 LoL 월드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젠지를 3대 1로 꺾고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로써 KT는 오는 9일 중국 청두에서 T1과 소환사의 컵을 놓고 2025시즌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됐다.
LoL e스포츠의 역사에 남을 만한 언더도그의 반란이다. KT는 한국 LCK 3번 시드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젠지는 LCK 1번 시드. 앞선 3개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명실상부한 이번 대회 우승 후보 1순위였다. 하지만 막상 두 팀이 맞붙자 KT가 시리즈 내내 시종일관 젠지를 압도하는 그림이 나왔다. KT는 3·4세트에서 상대에게 반격 기회조차 내주지 않고 대승을 거두면서 거인을 쓰러트렸다.
2025시즌 개막 전 KT는 4~6위권 팀으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LCK 1~2라운드 동안은 그 순위를 오갔다. 디플러스 기아와 5·6위 결정전을 치른 끝에 간신히 5위 자리를 확보, 레전드 그룹에 들었다. 그랬던 KT가 최소 세계 2위 자리를 확보한 건 곽보성의 공이 컸다. 그는 이날도 요네와 아지르·카시오페아로 맹활약을 펼치면서 상대의 게임 플랜을 봉쇄했다.
KT뿐 아니라 곽보성 역시도 생애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무대를 밟는다. 그는 내년이면 선수 생활 10주년을 맞지만 기나긴 커리어의 굴곡 가운데에서 월드 챔피언십 결승 진출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곽보성은 젠지를 꺾은 직후 무대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2일, 짧은 전화 인터뷰로 그의 심경과 대회 준비 과정을 들어봤다.
-결승 진출을 확정하고 하루가 지났는데 지금 기분은 어때요? 실감이 나나요.
“오늘은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하네요. 어제 경기가 끝났을 당시에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숙소로 돌아와서 뒤늦게 식사를 하고, 좀 쉬다가 경기 영상을 다시 봤어요. 그러다가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어요.”
-어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장까지 왔습니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았어요. 어쨌든 실력은 젠지가 우리보다 우위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보다 잃을 게 더 많은 것도 젠지였어요. 부담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보여주고 싶은 건 다 보여주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했어요.”
-언제 KT가 시리즈를 잡을 거라고 직감했습니까.
“1세트를 플레이하면서부터 왜인지 긴장이 안 됐어요. 그때부터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사실 1세트가 KT로서도 쉽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그 게임을 잡은 뒤로는 ‘오늘 우리가 이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세트, 아지르로 2레벨 Q가 아닌 E를 배워 딜 교환에서 재미를 봤습니다.
“그건 아주 예전부터 나온 플레이예요. 예전에 아지르가 기민한 발놀림 룬을 선택하던 메타가 있었어요. 그때도 아지르 대 오리아나 메타였는데 아지르가 기발로 버티는 구도였죠. 그런데 그래도 오리아나가 세게 딜 교환을 걸면 아지르 쪽이 버티기 힘들었거든요. 또 그때 아지르의 Q도 초반 구간 너프를 당해서 Q로 딜 교환을 해도 이득을 못 봤어요. 차라리 2레벨에 E를 찍고 받아치는 방식을 시도해봤는데 결과가 괜찮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연구한 오래된 딜 교환 스킬입니다. 기발 아지르가 유행하던 때부터요. 이전에 다른 경기에서도 저나 다른 선수가 선보인 적이 있어요.”
-KT 밴픽과 메타 해석에 대한 호평이 나옵니다. 다른 팀들보다 앞선다고 봅니까.
“사실 KT의 챔피언 폭이 넓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선수단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시고, 상대 팀의 선호도까지 고려해서 밴픽을 짜주세요. 선수단은 밴픽에서 큰 의견을 내지 않는데 세 분이 알아서 조율해주시는 덕분에 늘 좋은 밴픽이 나오는 거 같아요.”
-줄곧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치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더 큰 무대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는 상황이었잖아요. 긴장하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하는 데엔 그런 마음가짐이 더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그리고 KT는 어떤 상대와 붙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팀이에요. 겸손함을 유지하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으로 대회에 임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결승전까지 약 일주일이 남았습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입니까.
“일단 저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웃음)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건 컨디션 관리겠죠. 틈틈이 솔로 랭크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경기 당일 최상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끔 컨디션 관리에 집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KT 팬들이나 곽 선수의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선수단이 어제(1일) 젠지라는 강팀을 잡았어요. 자칫 자만심에 취할 수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나가서 결승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KT 팬분들, 마지막으로 한 경기만 더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상하이=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