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중앙에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을 대표하는 20여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대강당에 길게 섰다. 1000여명의 참석자들은 그들을 향해 손을 얹거나 멀리서 손을 뻗어 기도했다. “10억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애쓰는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통역 앱이 각국 언어로 쉼 없이 중계되는 가운데 기도 소리가 4500석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세계 150개국에서 온 복음주의 지도자 1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1일 개막해 5일까지 열리는 ‘글로벌 하비스트 서밋(Global Harvest Summit) 2025’에서는 “기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도적 전략과 연합이 뒤따라야 한다”는 선교 현장의 변화가 감지됐다.
2033년까지 전 세계 10억명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거대한 비전을 품은 이 대회는 황성주 이롬그룹 회장이 캠퍼스 크루세이드 포 크라이스트(CCC) 창시자 빌 브라이트에게서 영감을 받아 2022년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이어져 온 서밋은 올해 제주에서 열렸으며 주제는 ‘기도와 선교의 연결을 통한 대각성’(Great Awakening by Multiplying Prayer-Mission Connection)이다.
“교회는 잠들어 있다”… 복음 확산 정체의 경고
2일 오후 세션에서 제이슨 만드리크 오퍼레이션월드 대표가 연단에 섰다. 세계 복음화 통계 작업을 하는 ‘오퍼레이션 월드(Operation World) 편집자이자 국제 WEC 선교회 연구가인 그는 “세계기독교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가 제공하는 국제선교연구회보(IBMR)에 따르면 1900년 당시 전 세계 인구의 33%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2025년 현재는 32%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부흥은 있었지만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게 만드리크 대표의 냉정한 진단이었다.
그는 “전 세계 인구의 28%가 여전히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그 수는 매일 2만5000명씩 늘고 있다”며 “교회의 분열과 잘못된 우선순위가 복음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인들은 평균 소득의 1.8%를 교회와 사역에 헌금하지만 미전도 종족 선교에는 그중 극히 일부만 사용된다”며 “미국에서 반려동물 핼러윈 의상에 쓰이는 금액이 미전도 종족 선교비보다 많다”고 덧붙였다.
만드리크 대표는 “서로의 교리를 지키는 일보다 세상의 절망과 악의 구조를 함께 돌파하는 연합이 더 시급하다”며 “다양성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교회가 연합을 경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라를 제자로 삼으라”… 복음에서 리더십으로
이어 단상에 선 마크 알턴 벨릴스 글로벌 트랜스포메이션 네트워크 대표는 “복음화와 부흥만으로는 국가 전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예수의 말씀 속 에클레시아(Ekklesia)는 종교 조직이 아니라 도시의 문제를 논의하는 시민 협의체를 의미한다”며 “교회는 사회 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해법을 제시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벨릴스 대표는 구약 에스겔서를 언급하며 “하나님은 제사장, 정치 지도자, 예언자들 사이에서 나라를 위해 설 지도자를 찾으셨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도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책임 있게 행동할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뿐 아니라 교육·의료·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리더를 세웠고 이러한 전략적 접근이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며 “2033년까지는 영혼의 수확을 넘어 ‘나라를 제자로 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유엔이나 다보스포럼처럼 각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국가 전략을 논의할 ‘킹덤 포럼(Kingdom Forum)’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도에서 전략으로, 감동에서 실행으로”
이번 서밋에는 릭 워런 미국 새들백교회 설립목사,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 칼리토 파이스 브라질 시다지교회 목사 등 각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명예의장으로 참여했다.
공동 대회장인 황덕영 새중앙교회 목사는 “기도에서 전략으로, 감동에서 실행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번 서밋의 핵심 정신”이라며 “2033년까지 전 세계 교회가 하나의 공동 비전을 품고 협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성주 회장은 “하나님이 마지막 시대에 위대한 회복(Great Return)과 은혜의 유예(Great Delay)를 행하고 계신 것 같다”며 “한 영혼이라도 더 거두신 뒤에 재림하시려는 긴장된 상황 속에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룩한 삶의 비결은 내일 주님이 오신다고 믿고 사는 것”이라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홀리 루틴(holy routine)을 회복하자”고 당부했다.
그는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께서 ‘추수꾼을 보내달라’ 하신 말씀은 단순한 간청이 아니라 ‘강제로 흩어버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다”며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거지가 구걸하듯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령께 의존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며 “이 일을 감당할 새로운 세대를 세우자”고 덧붙였다.
마민호 한동대 교수는 “하나님은 숫자에 제한받지 않으시지만 교회가 책임을 지려면 데이터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기도와 감동에 머무르지 않고 근거 있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