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통신] Brilliant, Dangerous, Dominant!

입력 2025-11-02 03:57 수정 2025-11-02 14:00
라이엇 게임즈 제공

“당연히 걱정이 있다. 그러나 만약 팀의 신인들이 1군으로 콜업된다면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역할을 맡고 감수해야 할 만큼 나도 경력이 쌓였다. 전처럼 소위 S급 선수들끼리 팀을 짜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을 우선적으로 따질 시기는 지났다. 팀에 일단 내가 있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지난해 10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디디’ 곽보성이 밝힌 KT 롤스터와의 재계약 당시 심경은 그랬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이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 진출’이라니, 1년 만에 다시 보니 이보다 겸손한 각오가 없었다.

KT는 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5 LoL 월드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젠지에 3대 1로 이겼다. 이날 승리로 KT는 2012년 리그 오브 레전드(LoL) 팀 창단 이후 최초로 월드 챔피언십 결승 무대에 올랐다.

곽보성의 손끝에서 KT의 새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는 이날 젠지 상대로 요네·라이즈·아지르·카시오페아를 뽑아 만점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1세트에선 역전의 발판을, 3세트에선 팀 승리의 기반을 만들었다. 4세트에서도 적극적인 찬스 메이킹으로 팀이 유리한 한타 구도를 만들 수 있게끔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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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보성으로 시작해 곽보성으로 끝나기 직전인 KT의 2025시즌이다. 시즌 초 KT는 부진했다. 곽보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흔들렸다. 탑라이너와 원거리 딜러, 서포터가 주전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정규 시즌 막바지에 간신히 베스트 라인업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면서부터 KT는 견고해지기 시작했다. 곽보성 외의 선수들이 서서히 자신들만의 리듬을 찾았다. 젠지를 꺾으면서 시즌 최종 성적 3위와 월드 챔피언십 3시드 확보에 성공했다. 최종적으론 5명 전원이 활약했지만, 그건 곽보성이란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곽보성은 재계약 당시 “내년 KT의 목표는 무조건 월드 챔피언십 진출이다. 선수 곽보성의 목표는 내년 팀원들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팀의 신인 선수들을 잘 이끌어나가되, 그 점에만 너무 매몰돼 내 플레이까지 흐트러지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도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 약속을 지켰다.

곽보성은 또 “신인들이 처음 1군에 올라오면 플레이가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내가 좋은 기량을 유지해서 신인 선수들의 기량이 천천히 올라와도 문제없도록 만들겠다”고도 했다. ‘퍼펙트’ 이승민과 ‘피터’ 정윤수의 지난 1년 동안의 성장으로 그 약속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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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곽보성이 못 지킨 약속도 있다. 그는 “올해는 하위권 팀들한테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며 “내년엔 안정적인 게임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2025년의 KT도 마찬가지로 자극적이면서도 정신 없는 롤러코스터였다.

곽보성은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 전 디지몬 OST를 들으면서 동기부여를 얻을 정도다. 그리고 그가 자주 듣는다는 노래 ‘브레이브 하트’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의 2025시즌을 축약한 듯한 그런 가사.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았다면 할 수 있어…때로는 너도 잊고 있지만/너는 충분히 강하단 걸…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너는 충분히 잘 해온 걸…열어 봐 네 손으로 내일을/꿈이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잊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상하이=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