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동 제안에 침묵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주일만에 병원 건설 현장에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보다 내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내년 초로 예상되는 9차 당대회 전까지 북·미 대화보다 내부 성과 달성에 집중할 전망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인근 강동군 병원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31일 보도했다. 30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만남을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24일을 마지막으로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등 사실상 거절 의사를 비쳤다.
일주일만에 등장한 김 위원장은 강동군 병원 건설 현장을 선택하면서 북·미 회동보단 내부 성과 달성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2월 착공식, 6월 건설 현장 지도 등 올해만 강동군 병원을 세 차례 방문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날도 김 위원장은 “나라의 보건시설 건설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윤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김 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과 구성시, 강동군 그리고 용강군에 건설 중인 시·군병원 현장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며 “깊은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방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연장선으로 보건분야 현대화 계획 사업을 내세운 만큼 성과 달성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보단 내년 초로 전망되는 9차 당대회 전까지 경제 분야 등 내부 상황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북한의 당대회는 지난 5년간 정치, 경제, 외교 등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5년간 주요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행사다. 통일부 관계자는 “당분간 미국 등과 대화보단 9차 당대회 전까지 내부 성과 달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의 무관심에도 정부는 북·미 대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취임 100일을 맞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겨우내 얼어붙은 얼음장이 하루아침에 녹지 않듯 우리 앞에 놓인 남북관계의 얼음장은 아직 단단하다”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나간다면 하루하루 얼음장이 얇아지고 기다렸던 봄날은 결국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를 살려 앞으로 100일 안에 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전환점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