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피해에도 추징금은 ‘찔끔’… 캄보디아 범죄수익 추적 ‘난관’

입력 2025-11-01 05:01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가 지난 21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캄보디아발 사기 피해 규모에 비해 범죄자들에게 부과되는 추징금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징금 계산의 근거인 범죄 수익을 입증한 것부터 난항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국인 총책에게 대부분의 피해액이 흘러들어가는 구조도 범죄 수익 추적을 어렵게 하고 있다.

1일 국민일보가 범죄단체 가입,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7일까지 1심이 선고된 캄보디아 범죄 조직원들의 판결문 9건을 분석한 결과 추징금은 최소 0원, 최대 7000만원이었다. 평균 7억원, 최대 30억원에 달하는 사기 피해액과 큰 차이가 난다.

이들 중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총책은 없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콜센터 직원을 비롯해 주식 리딩방 사기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유인책,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팀장 등으로 범행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추징금은 피의자가 범죄로 취득한 수익을 근거로 수사기관이 산정한다. 그런데 피의자들이 범죄 수익을 숨기는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이를 추적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수사 당국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계좌 추적이 불가하면 주로 피의자 진술을 토대로 범죄 수익을 특정하는 게 현실이다.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에 조직원들이 생활한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 연합뉴스

일례로 지난 1월 울산지법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로맨스 스캠으로 2억5000만원 이상을 편취한 A씨에게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추징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추징금에 대해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범죄 수익으로 1만1700달러를 취득했다고 진술했다”고 적혀있다.

또 다른 로맨스 스캠 조직원 B씨에게는 추징금 없이 징역 4년이 선고됐다. B씨의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7개월간 범죄 단체에서 일하면서 받은 급여가 월 200~300달러(약 28만~42만원)에 불과하다고 진술했고, 유흥비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B씨의 범죄로 발생한 피해액은 2억9700만원가량이다. 한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는 “피의자 입장에서는 범행으로 번 돈의 일부만 진술하고, 추적이 불가한 계좌에 있는 수익에 대해선 함구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피의자들은 범죄 수익을 가상 자산으로 바꿔 은닉하거나 대포 통장, 차명 부동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세탁’하는 수법을 쓴다. 수사기관이 돈의 흐름을 쫓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다. 경찰 출신인 전형환 메가엑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요즘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로 범죄수익을 지급하는 조직도 많다”며 “통장 거래 내역 등 범죄 수익 관련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계좌로 범죄 수익을 빼돌리는 수법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추적이 가능한데, 나라에 따라 공조 가능성은 다르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사기 범죄도 조직이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는 만큼 범죄 수익 추적의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규모 범죄 조직의 총책은 중국인 등 외국인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총책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보다 정확한 범죄수익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액에 한참 못 미치는 추징금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지난 5월 태국 범죄조직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4000만원을 잃은 조모(44)씨는 “피해자들이 고통을 받는 것에 비해 형량이나 추징금은 너무 낮은 것 같다”며 “경찰한테 ‘추징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봤을 때 ‘아직 압류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와 실망스러운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캄보디아 사기 피해가 심각해지는 만큼 범죄 수익을 쫓는 데 수사력을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충남경찰청은 최근 검찰에 구속 송치된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 45명의 범죄 수익을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의 계좌 추적, 휴대폰 포렌식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환 피의자 11명을 구속 송치한 경기북부청도 이들의 범죄 수익을 수사 중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