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발라에 있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대표 서정인 목사) 어린이센터. 250여명 아이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세 명의 셰프가 열악한 주방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레스토랑 평가 가이드인 미슐랭의 스타를 받은 화려한 주방이 아닌 1960년대 시골 부엌보다 더 낙후된 곳이었다. 가스레인지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조리 도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셰프들의 손끝에서 한국식 찜닭과 단호박 디저트가 완성되어 갔다. 아이들은 수줍은 미소로 감사를 표했고 그 순간 셰프들은 깨달았다. 이곳에서 자신들이 만든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기도’였다는 것을.
국내 최정상 셰프 12인이 참여하는 한국컴패션의 ‘테이블 포 올 2025’ 캠페인은 오는 12월까지 진행된다. 이 가운데 서현민(레스토랑 알렌) 조희숙(한식공간) 박성배(온지음) 셰프는 지난 7월 한국컴패션과 함께 참여한 우간다 비전트립을 통해 가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25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존엄의 식탁’을 차려주고 돌아왔다. 최근 서울 용산구 한국컴패션 사옥에서 서현민, 박성배 셰프를 만났고 조희숙 셰프는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요리가 다시 예배가 되는 순간
“요리를 통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구나. 이렇게 요리하는 게 행복했었나 싶었죠.”
조은희 방장과 함께 2025년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10위에 오른 온지음을 이끄는 박성배 셰프는 최근 서울 용산구 한국컴패션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간다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동안 그에게 요리는 늘 ‘생계’이자 ‘성취’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우간다의 열악한 주방에서 아이들을 위해 요리하던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단기선교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에 방문하면서 ‘언젠가 나도 선교에 쓰임 받아야겠다’고 서원했죠. 그런데 그게 요리를 통해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요리의 본질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더라고요.”
서울 홍성교회에 출석하는 박 셰프는 바쁜 주방 일상 속에서 선교가 먼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만난 우간다는 그에게 요리 자체가 선교이자 예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날 이후 제 주방이 달라 보였어요. 손님에게 대접하는 한 접시 한 접시가 사랑을 전하는 통로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별을 얻으려 달려왔는데 그곳에서 별보다 더 빛나는 아이들을 봤어요.”
서현민 셰프의 고백이다.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에서 10년간 수셰프로 일한 그는 가난한 유학 시절 하루 14시간씩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셰프의 꿈을 키웠던 그에게 성공은 곧 ‘미슐랭 스타’였다. “우간다에서 아이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성공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명성이 아니라 사랑에서 진짜 성공을 발견했달까요.”
서울 허브교회에 출석하는 그는 2022년 첫 ‘테이블 포 올’ 캠페인부터 꾸준히 참여해 왔다. “요리라는 재능이 나눔이 될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화려한 주방에서 소박한 부엌으로 갔지만 거기서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만났습니다.”
‘한식 대모’로 불리는 조희숙 셰프는 우간다 경험이 자신에게 신앙 회복의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요리하는 일을 소명으로 받지 않았다면 이 나이까지 요리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요리 인생 후반에 쓰임 받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 감사하지만 많이 늦어졌다는 아쉬움도 듭니다.”
40여년간 한식 외길을 걸어온 조 셰프는 미국 워싱턴 한국대사관저 총주방장을 역임했고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된 인물이다. “우간다 아이들을 위해 요리하면서 오랜 공백을 가졌던 신앙 회복 목표에 접근하게 됐습니다. 친정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모두가 행복한 식탁을 향한 초대
‘테이블 포 올’은 단순한 미식 행사가 아니다. 셰프들의 전문성과 명성을 ‘선한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특별한 협업의 장이다. 국내 최정상 셰프 12인과 소믈리에 크루 ‘쏨즈’, 페스트리 부티크 ‘노틀던’이 함께하며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 모금된 후원금은 우간다 어린이와 가정의 식량 지원과 자립을 위해 사용된다.
요리계 최고의 권위인 레스토랑 평가 가이드 ‘미슐랭’의 별을 따기 위해 달려온 그들이 우간다에서 발견한 것은 별보다 더 빛나는 것이었다. 세 명의 셰프는 나눔을 통해 회복되는 생명과 사랑으로 차려지는 ‘천국의 잔치’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입을 모아 말했다. “음식은 곧 생명이고 사랑입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