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좌우 뛰어넘는 사랑…구세군 김석태 사관, 100년 헌신의 삶

입력 2025-10-30 16:41 수정 2025-10-30 17:06
김석태(왼쪽 세번째) 사관과 부인 임정선(가운데) 사관이 30일 경기도 과천 구세군사관대학원대에서 열린 김 사관 백수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100세 기념 케이크 커팅을 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이념으로 갈라선 이들 사이 폭력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평안남도 영원 출신으로 원치 않게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포로가 된 청년 김석태는 수용소 안에서 위생병으로 일했다. 어느 날 폭동으로 다친 인민군 초급장교가 실려 왔다. 다른 반공포로들은 “우리 동료를 죽인 자들”이라며 그를 해치려 했다. 이때 김석태는 그들을 막아서며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 지금은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직접 상처를 돌보고 기도했다.

70여년 뒤인 30일 경기도 과천 구세군사관대학원대에서 백수(白壽)가 된 김석태 전 구세군 한국군국 사령관에게 헌정하는 학술회와 기념행사가 열렸다. 1926년 1월생인 그는 이날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서울에 와서 귀순했는데 날 잡아다 포로수용소에 3년 가뒀다”고 말했다. 이후 대한민국 군대에서 3년간 복무하다 구세군을 만났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그는 구세군 사관이 되어 사관학교 교장, 사령관 등을 역임하며 성결과 복음과 섬김의 실천을 강조했다.

김석태 사관이 30일 경기도 과천 구세군사관대학원대에서 열린 김 사관 백수 기념행사에서 앤서니 코터릴 전 영국군국 사령관과 50여년 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학술회는 그의 삶과 신학을 조명했다. 양윤석 사관은 김 사관의 신앙의 중심에 “나는 산 것이 아니라 살게 하신 것”이라는 고백에 있다고 전했다. 이 고백은 전쟁 초기 절두산 구덩이에서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 한 번만 살려주시오. 미래는 주를 위해 살겠나이다”라고 드린 약속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김종선 사관은 김 사관의 신학이 “삶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철 사관은 69년간 인연을 바탕으로 그의 성결과 헌신의 영성을 증언했다.

1970년대 영국 방문 중 그가 전도했던 한 영국 소년은 훗날 구세군 영국군국 사령관이 됐고, 50여년이 지나 김 사관을 찾아왔다. 앤서니 코터릴 전 사령관은 이날 김 사관을 만나 손을 잡고 “정말 오고 싶었던 한국에 오는 데 50년이 걸렸다”며 “김 사관의 부인 임정선 사관이 영국에 두고 간 책에 감명을 받았고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축사에서 “제가 16살이던 시절 침실에서 자려고 할 때 김 사관이 찾아와 저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는 ‘언젠가 구세군 사관이 될 거야’라고 말한 것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이 30일 경기도 과천 구세군사관대학원대에서 열린 김 사관 백수 기념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사관은 백수를 맞이하고도 한국교회를 걱정했다. 그는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거나 호화 건축물 등 외형에 치중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그가 강조한 것은 ‘찬양’이었다. 그는 “찬양이 전차보다 더 나은 무기다. 여호사밧이 찬양으로 승리하지 않았나”라며 “교회가 찬양을 회복하면 한국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100세 사관의 기도 제목은 통일이었다. 그는 “나는 지금도 하루 세 번씩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한다”며 “우리가 기도하면 실행은 하나님이 하신다. 김정은이 성경을 읽고 회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