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재활병원. 요시다 고조(吉田耕三·84) 서울일본인교회 목사가 휠체어를 타고 기자를 맞이했다. 뇌출혈로 입원한 탓에 혼자 거동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흐릿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복음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그의 눈빛이 또렷했다.
“화목이란 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걸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말을 이어갔다. “복음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하나로 묶는 힘입니다.”
44년 전 사죄와 화해를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요시다 목사는 두 나라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을 해왔다. 서울일본인교회 담임목사로 그리고 양국 화해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로 사역했다.
194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요시다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 속에서 자랐다. 자연스레 ‘전쟁 책임’과 ‘화해’라는 주제를 마음에 품었다. 청년 시절 신앙을 갖고 도쿄크리스천칼리지(현 도쿄기독교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태평양방송협회와 나고야 근교 모모야마교회에서 사역했다.
요시다 목사의 삶이 방향을 튼 건 70년대 한국 방문이었다. 교회에서 휴가를 얻은 그는 74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주최한 ‘엑스플로 74’ 선교대회에 참석했다. 연인원 수백만명이 찬양과 기도로 광장을 가득 메운 장면을 마주했다. 복음이 먼저 들어왔지만 여전히 냉랭한 일본과 달리 한국교회의 신앙 열정은 그에게 도전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는 1~2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교회와 선교지를 답사하며 공부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경기도 화성 제암교회 학살 사건 현장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한 고통과 죄의 현실을 마주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깊이 회개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두 나라의 화해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81년 요시다 목사는 아내, 두 딸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파송을 받아 서울에 정착한 그는 ‘사죄와 화해의 선교’를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일본 교인들의 한국교회 방문을 이끌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바른 청산을 호소해왔다.
특히 독도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배상, 역대 정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도 규탄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이며, 이를 강요한 일본인은 한국인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해서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오랜 세월을 보낸 요시다 목사는 곧 한국을 떠난다. 많은 이들의 기도와 돌봄 속에 재활을 이어왔지만, 장기간 치료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다음 달 중순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화해의 사명은 그의 딸 히라시마 노리코 전도사와 사위 히라시마 노조미 목사가 이어받는다.
그는 “한국에 올 때 ‘평생 한국에서 살겠다,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왔다. 이번 귀국은 그런 결심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잠시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앞으로는 일본에서도 그 사역을 다른 방법으로 이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병상에서도 요시다 목사는 ‘화목’의 복음을 붙들고 있었다. “우리는 ‘사죄와 화해’의 사명을 가지고 한국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화목이란 다툼이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한 나라만의 결심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두 나라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평생 의지해 온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요시다 목사는 잠시 침묵한 뒤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읊조렸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이다.
“이 말씀은 제 사역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화해를 이루셨기에 우리도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래는 기사 본문에 담지 못했던 인터뷰 내용이다. 요시다 목사의 목소리 그대로 전한다.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최근 치료받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자주 하시는지요.
“44년 동안 건강하게 지냈습니다. 이번에 병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셨다는 마음이 듭니다. 뇌출혈을 겪으며 ‘우리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신앙의 길을 걸으시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신지요.
“먼저 저는 한국을 ‘십자가의 거리’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디서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아는 한, 이렇게 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는 도시는 없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은혜는 가족과 관련된 일입니다. 큰딸이 한국 고등학교·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또래 친구들과 7년 동안 함께 학교생활을 한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일본 학생들, 심지어 미션스쿨에 다니는 아이들도 신앙의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한국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신앙을 나누며 성장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참 자랑스럽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회 안에서 복음이 뿌리내리는 일은 고독한 길이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고독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위로는 무엇이었나요.
“그와 비슷한 말씀을 여러 곳에서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전도할 때, 고독하지 않은 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디를 가든 복음이 닿지 않은 동네는 없었습니다.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도, 우리가 전도하려고 하면 복음을 들을 사람들이 있었고 또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게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본 선교는 어렵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복음이 전해지기 어려운 곳은 있습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일 뿐,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디서나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한일 간의 역사적 상처 속에서도 ‘복음은 용서를 가능케 한다’고 메시지를 전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어떤 경험에서 나온 고백이었는지요.
“복음 자체가 듣는 사람에게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용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사실 그것은 매우 대단한 일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심지어 신자들끼리도 다툼이나 대립이 생깁니다. ‘왜 믿는 사람끼리 싸우느냐’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사인 저 역시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어도 그 사랑을 실천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복음이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일본으로 돌아가시기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유가 있으실지요.
“오랜만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1~2년에 한 번씩 일본과 한국을 오가곤 했는데, 지난 2~3년 동안은 너무 바빠서 귀국을 못 했습니다. 올해는 꼭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44년 전 한국에 올 때는 ‘평생 한국에서 살겠다,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왔습니다. 이번 귀국은 그런 결심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잠시 치료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딸, 손주들이 일본에 있어서 그들을 만나러 가려 합니다. 한국에서 44년 동안 사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앞으로는 일본에서도 그 사역을 다른 방법으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 일은 끝내지 못해 아쉽다’는 마음이 드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저희는 ‘사죄와 화해’의 사명을 가지고 한국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사역의 주제는 바로 ‘화목’과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 화목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화목이란 다툼이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조금씩 옅어지지만...(침묵)
한국에 온 지 44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만 아직 ‘한일 간의 온전한 화해’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늘 마음에 남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한 나라만의 결심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두 나라가 함께 있어야 가능합니다. 지금의 한일 관계를 보면, 국가 차원에서는 화해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교회와 교회, 목회자와 목회자 사이에서는 여전히 벽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내에서도 교단과 교단이 화해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일 교회가 복음 안에서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날을 꿈꿉니다. 복음은 두 나라를 하나로 묶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고 복음의 화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