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형 학원 관계자 A씨는 최근 서울역에서 자녀의 과외 교습을 맡았던 B씨를 우연히 만났다. B씨는 사교육업계에서 꽤 알려진 강사로 입시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B씨는 지방에 강의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B씨는 과거에는 지방 학생이 주말 등을 이용해 서울 사교육특구에 강의를 들으러 왔다면,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의 유명 사교육 강사를 지역으로 초청하는 빈도가 늘었다고 전했다.
사교육 부르는 지자체
28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자체와 사교육 업체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지자체는 지역에서 누리기 어려운 서울의 사교육 서비스를 관할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해주고, 사교육 업체는 금전적 이득에 더해 사회 공헌을 한다는 이미지와 공신력을 챙길 수 있어 ‘윈·윈 관계’라는 설명이다.문제는 지자체 예산이 사교육으로 흘러갈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사교육 억제 정책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지자체 등 51곳에서 사교육 강사를 초빙해 대입 설명회를 가졌다. 서울 12곳, 경기 7곳, 경북 8곳 순으로 많았다. 사교육걱정은 “공공의 영역에서 혈세를 이용해 사교육의 영향력을 높이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표적인 지자체-사교육 협력 모델은 ‘서울런’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시작한 사업으로 저소득층 학생에게 사교육 인터넷강의 등을 무상 제공한다. 서울시는 충북, 인천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전국런’을 구상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4년 간 3만6000명이 도움을 받았고 수능 응시자 95%가 ‘도움이 됐다’고 응답하는 등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런 참여 가구의 사교육비 감소액은 연 평균 34만7000원이다.
사교육 업체들은 서울런 사업으로 매년 60억~7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서울시는 사교육 업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세금으로 사교육을 지원한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 주장은 단지 만족도 조사에 불과하며 학습 효과와 사교육 경감 효과 모두 제한적”이라며 사교육 업체들의 배만 불려준다는 입장이다.
교육 소외 계층 옥죄는 사교육비
지난해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지출한 돈은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교육부는 매년 치솟는 사교육비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비는 단기 처방으론 해소하기 어렵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인내를 요구하는 상황이다.정부가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 사교육비 부담은 저소득층과 교육 소외지역 학생·학부모를 옥죄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교육비는 대도시 지역과 고소득층에서 많이 지출하지만, 읍면지역과 저소득층 사교육비가 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교육부가 올해 발표한 2024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월 소득 300만원 미만 가정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23년 18만3000원에서 지난해 20만5000원으로 12.3% 뛰었다. 다른 소득 구간을 압도한다. 부모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가정의 사교육비 증가폭도 두드러졌다. 외벌이 가정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은 8.4%, 맞벌이는 9.5% 수준이다. ‘경제활동 안함’ 가정의 경우 2023년 16만9000원에서 지난해 19만8000원으로 17.3% 나 뛰었다.
지역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서울, 중소도시, 광역시, 읍면지역 순이다. 하지만 읍면지역과 중소도시에서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증가율로 보면 읍면지역이 14.9%로 가장 많고 중소도시 9.3%, 광역시 8%, 서울 7.2% 순이다.
사교육비 상승은 공교육만으로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국어·영어·수학 등 일반교과 사교육을 하는 이유로 학부모들은 ‘학교수업 보충’(50.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선행학습(23.1%), 진학준비(14.4%), 불안심리(3.3%) 등을 훨씬 상회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수준의 학생이 모이는 공교육 교실과 달리 학원에서는 학생 수준별 맞춤형 수업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 등의 진단을 내놓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2028학년도 대입 개편 등으로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큰 폭의 대입 개편은 불가피하게 입시 현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정보 격차를 확대한다. 예컨대 고교학점제로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축소되고, 수능은 문·이과 수험생이 완전히 같은 시험을 치른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은 정시에서 고교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 반영을 늘리고 있다. 하나같이 입시 현장을 출렁이게 할 변화들이다. 사교육 업체들은 앞다퉈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공교육의 대응은 더딘 상황이다.
한 입시 전문가는 “소규모 지자체들은 교육 격차 때문에 대도시로 학생이 빠져 나가는 상황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는데 그 중 하나가 사교육과의 협력”이라며 “세금으로 사교육을 지원한다는 비판과 지역 학생을 위한 교육의 질 제고라는 딜레마 상황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