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유가족 “놀다 죽었다는 비난보다 尹정부 대응이 더 큰 2차 가해”

입력 2025-10-28 18:51
2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민추모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3주기 추모에 함께하고 있다. 이찬희 기자

“놀다 죽었다는 막말보다 더 아팠던 건 윤석열정부 책임자들의 소극적 대응이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3년이 지났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참사 원인과 책임에 대한 진상 규명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의진(사망 당시 29세)씨의 어머니 임현주(59)씨는 참사 당일 경찰에 연달아 압사 위험 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언급하며 “기동대 한 부대만 배치됐어도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씨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앞선 조사에서는 원인을 단순히 ‘군중 유체화’라고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사람이 많았다는 게 아니라 그 위험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정부가 행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몰려 자기 힘으로는 움직이기 힘든 군중 유체화 위험을 막지 못한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다.

지난 23일 발표된 정부 합동감사 결과에서는 정부 실책이 참사 원인으로 지목됐다. 감사단은 참사 당일 압사 위험 긴급신고 11건 중 실제 출동은 1회뿐인데도 시스템에는 조치가 있었던 것처럼 허위 입력된 사실이 있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되면서 경비 인력이 대통령실 주변으로 집중된 점도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고 신애진(사망 당시 24세)씨의 어머니 김남희(51)씨는 정치권 막말을 언급하면서 “그 정도 말은 해도 된다는 정치권의 묵인이 결국 사회 전반의 2차 가해를 내버려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경남 창원시의원은 2022년 SNS에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소리 나온다’ 등의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현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차 가해 관련 게시글 121건을 수사 중이다.

유가족들은 앞으로 조사 과정을 함께 지켜봐 달라고 요청했다. 임씨는 “이제야 한 발을 뗐지만 모든 책임자를 조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지금부터의 진상규명을 함께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방한 중인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을 상대로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를 이날 진행했다. 유가족들은 29일 참사 3주기 기억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중이다. 조사는 이란, 프랑스, 노르웨이 등 6개국 유가족 17명, 오후 러시아, 호주 등 5개국 유가족 17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24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임현주(59)씨가 3주기 기념물품을 들고 있다. 이찬희 기자

다음은 임현주씨와의 일문일답.

-고 김의진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3년 전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처음 접했나.
“의진이는 집 안에서는 온화하고 사랑이 많은 장남이자, 건설환경연구원 일을 하며 꿈 많고 책임감 강한 청년이었다. 퇴근길에 이유 없이도 엄마에게 꽃다발을 사들고 오는 다정한 성격이었다. 낮에 대학 친구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자 간 이태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온지 단 10분 만에 참사를 당했다. 실종자센터로부터 소식을 전달받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3년간 유가족은 의진씨를 어떻게 추모해왔나.
“매일 아침 의진이 방의 불을 켜며 억울함을 반드시 밝히자, 네가 꿈꾸었던 삶을 엄마하고 같이 만들어 가보자고 말한다. 유가족은 참사 희생자 159명 누구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전을 열고, 기억을 쓰고, 장학재단을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진정한 애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는 국가 앞에 좌절당한 사랑하는 아이들이 꾸었던 소망을 하나하나 실현해내고 싶다. 세월호 정신이 있듯이 이태원의 청년 정신을 이어가고자 한다.”

-정치권에 가장 바라는 부분은.
“정권을 잡았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무책임하고 험한 말을 할 때 과연 우리 아이들이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지난해 12·3 계엄 이후로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태원 참사가 저희에게는 밝혀내야 할 또다른 계엄사태다. 우리는 거기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끝까지 진상규명해 무능했던 정권과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별법은 지난해 5월에 통과가 됐는데 특조위 조사 개시는 지난 6월부터였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민추모대회'를 앞두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김남희(51)씨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찬희 기자

다음은 김남희씨와의 일문일답.

-고 신애진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3년 전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처음 접했나.
“애진이는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스스로 잘 해내던 아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지 한달 남짓 지나 신입사원 동기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참사를 당했다. 새벽 3시에 아이 친구들한테 연락을 받고 서울 시내 병원들부터 원효로 체육관까지 다 찾아다녔다. 마지막 순간이 장례식 기억으로만 남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매해 10월 19일이 되면 생일 모임을 연다. 가족들과는 애진이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

-2차 가해를 직간접적으로 당한 적이 있나. ‘슬픔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식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반 시민들의 2차 가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윤석열 정부의 2차 가해에 대한 묵인이었다. 김미나 창원시의원, 한덕수 당시 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 등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정치화가 무엇일까? 되묻고 싶다.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떻게 정쟁일까. 참사의 원인은 인파 예상에도 아무런 대책을 준비하지 않은 정부, 112신고에도 대응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 정부에게 진실을 묻는 것이 정치화하는 것인가.”

-다시는 비슷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제도 보완 등 필요하다고 보나.
“우리나라 행정 체계는 절대 허술하지 않다. 인파 밀집은 신규 재난이고 매뉴얼이 없었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재난 관련 매뉴얼은 잘 구축됐지만 그걸 움직이지 않은 건 사람이다. 재난 참사는 예상하고 나타나는 게 아닌데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책임자들의 대처가 미진했던 것이다. 특별법이 지난해 힘들게 통과했지만 정부의 추진이 늦어져 특조위 출발이 1년이나 늦어졌다. 마찬가지 일이라고 보고 앞으로의 진상조사에 대해 기대하는 한편 우려하는 부분도 많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