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다” 살인 누명 벗은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피고인 첫마디

입력 2025-10-28 16:30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고인이 사건 발생 1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연 기자회견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으로 10여년간 옥살이를 한 피고인 부녀가 사건 발생 1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이들은 무죄 선고 이후 “기가 막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광주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의영)는 28일 살인 및 존속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백모(75)씨와 딸(41)의 항소심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백씨 부녀는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주민들이 나눠 마시게 해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이 사건으로 숨진 A씨의 남편과 딸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주요 증거였던 범행 자백이 검찰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이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이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한 백씨와 경계선 지능인 딸의 취약성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지적하며,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자백의 경위와 내용의 개연성을 봤을 때 백씨 등이 살인을 저지를 만한 객관적인 정황이 없음에도, 검사들이 반복적 질문으로 답변을 받아낸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범행을 서로 공모했다는 딸의 자백에 대해선 “유도신문에 따른 자백이 이뤄졌고 장시간 조사가 이뤄지면서 압박이 있었던 점이 인정된다”면서 “피고인들의 공모관계도 단순한 공범 가능성에 기초한 막연한 의심에 따라 공모 여부를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무죄 판결 이후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백씨는 “제가 더 할 말이 있겠나.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감옥살이를 어떻게 버텼냐는 질문에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백씨의 딸도 “수사관들이 진실된 수사를 했으면 한다”면서 “재심을 기다리는 분들이 저희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은 “재심 판결문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상소 제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며 대법원 상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광주=이은창 기자 eun526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