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자리에 분쟁 지역에서 오신 분들 계십니까.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분들, 그리고 여성과 어린이들이 박해받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들 계십니까.”
28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 둘째 날 오전 순서. 사무엘 치앙 WEA 부사무총장의 요청에 예배당 곳곳에서 참석자들이 일어섰다. 회중은 그때마다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치앙 부사무총장은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나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며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6500석의 예배당은 기도 소리로 가득 찼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박해와 폭력 속에서도 신앙을 붙든 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발언자들은 “침묵도 죄가 될 수 있다”며 교회의 책임과 회개를 촉구했다. 방글라데시 전국기독교연합 사무총장인 마르다 다스 목사는 개종한 여성이 집에서 쫓겨나거나 10대 소녀가 같은 이유로 2년 동안 방에 갇혀 학교에 가지 못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런 일이 벌어져도 피해자들은 가족의 수치가 됐다는 두려움이 커 교회에조차 말하지 못한다”며 “그 침묵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라고 말했다.
아이린 키바겐디 범아프리카기독여성연합 사무총장은 나이지리아·수단·콩고 등지의 실태를 전했다. 키바겐디 사무총장은 “납치와 강제개종, 성폭력과 강제 임신이 반복된다”며 “임신한 채 돌아오면 가정도 교회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사회에서 이방인이 된다”고 전했다. 엠마 판 데르 데일 젠더와종교의자유 대표는 “보복 위험이나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문을 닫는 교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며 “박해로 무너진 삶 위에 또 다른 상처를 추가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수를 따른 죄로 상처 입은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슈아 윌리엄스 오픈도어선교회 아프리카 지역 책임자는 “아프리카에서만 4500만명이 종교적 이유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그중 1600만명이 기독교인”이라며 “우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죄가 있다면 폭력에 대한 침묵”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북한 출신 지성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와 중국 내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을 언급하며 “2500만 북한 주민의 생명과 신앙의 자유는 한국교회가 외면해서는 안 될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가장 가까운 박해의 땅, 북한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허문영 평화한국 대표는 북한에 억류된 한인 선교사 문제를 짚으며 “김종욱·김국기 선교사, 최춘길씨와 중국 동포 장민석 선교사가 10년 넘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허 대표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 국제종교자유국과의 협력으로 억류 문제가 국제종교자유보고서·인권보고서에 공식 반영됐고, 최근 WEA 제네바 본부의 후속 조치로 유엔 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검토(UPR) 안건에 채택됐다. 허 대표는 “우리의 목적은 북한을 망신주거나 비난하거나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다. 교회가 무너진 지 70년이 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 모인 5000여명의 전 세계 지도자들이 한마음으로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새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WEA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일라시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 전 세계에 있고 오늘 우리를 위해 기도해준 것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으로 집을 잃고 가족이 흩어지며 교회가 파괴되는 일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기도가 산을 옮긴다는 것을 믿는다. 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산도 옮겨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단순한 중단이 아니라 빼앗긴 땅과 삶이 회복되는 평화”라며 “전쟁의 종결과 흩어진 국민이 집과 교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