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과로로 숨진 내 아들, 런베뮤는 ‘괴롭히지 말라’ 문자”

입력 2025-10-28 13:14 수정 2025-10-28 14:52
아버지 정씨의 지갑 속에 들어있던 효원씨의 증명사진. 이 사진은 효원씨의 영정사진이 됐다. 정효원씨 아버지 제공

“아직도 아들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현관문을 열면 아들 방이 바로 보이거든요. 소파에 앉아서 매일 아들 방만 보고 있는 거예요. 하나도 안 건드렸어….”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 인천점에서 일하던 고(故) 정효원(26)씨의 아버지 정모씨는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아들만 둘 있는 집안에서 효원씨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딸 같은 아들’이었다. 언젠가 효원씨는 취업용 증명사진을 찍었다며 “아빠,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해”라며 작은 증명사진 하나를 쥐여줬는데, 지갑 속에 넣어놨던 이 사진이 그의 영정사진이 됐다.

효원씨는 지난 7월 16일 회사가 마련한 인천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입사 14개월 만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특별한 지병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은 “주 80시간에 가까운 초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라며 최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 중인 회사 엘비엠(LBM)은 유족이 요청한 근로시간 자료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정효원씨는 밝고 싹싹한 성격으로 어딜가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효원씨 아버지 제공

여자친구와 생일파티를 하던 정효원씨의 모습. 정효원씨 아버지 제공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했다는 효원씨는 어디를 가든 ‘러브콜’을 받는 존재였다. 항상 밝았고 언제나 싹싹했다.

“효원이는 아르바이트할 때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다시 와서 일해라’, ‘대학교 가면 꼭 와라’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어요.”

정씨는 그 ‘러브콜’이 아들을 죽음으로 이끌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런베뮤 수원점으로 입사한 효원씨는 런베뮤에서도 ‘문제 해결사’로 통했다. “처음에 수원점으로 입사를 했는데, 그다음엔 강남점에 갔어요. 잠실점 매출이 안 오른다고 잠실점에도 가더라고요. 자기가 매상 올려서 성과급도 받았다고 자랑한 적도 있어요.”

정씨는 아들이 런베뮤 도산점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과도한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도산점으로 가고부터 아침 일찍 나가서 밤 11시, 12시에 집에 들어오더라고요. 집에 오면 쓰러져서 자기 일쑤였고요. ‘돈도 좋지만,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거 아니냐’고 말을 꺼냈던 기억이 있어요.”

런베뮤 도산점에서 근무하던 효원씨는 지난 7월 1일 런베뮤 인천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런베뮤 국내 7번째 지점인 인천점 개점을 2주가량 앞두고 마무리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천점이 또 오픈한다고 그쪽으로 발령이 났대요. 처음에는 ‘지금도 매일 힘들다고 하는데 인천까지 어떻게 출퇴근을 하냐. 가지 마라’라고 했어요.”

효원씨의 본가는 경기도 화성이다. 아버지의 염려에도 효원씨는 “가라는데 어떡하겠어”라며 인천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게 정씨가 본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집에서 인천으로 갈 때가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인천점으로 간 후에 4일인가 있다가 옷 가지러 잠깐 집에 왔었나 봐요. 그때도 얼굴은 못 봤어요. 집사람이 ‘저녁 먹고 가라’고 하니 바빠서 바로 가야 한다고 했대요. 그때 이후로는 통화도 못 했어요.”

유족이 제출한 재해발생경위서에 따르면 효원씨는 사망 전 일주일간 약 80시간 12분 근무했다. 그 이전 효원씨의 12주 평균(사망 전 1주 제외) 근무시간인 약 58시간32분보다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관련 지침상 단기 과로에 해당한다.

정의당은 이날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 말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사망 전날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자정 직전에 퇴근했다. 사망 닷새 전에는 21시간 일하기도 했다”며 “만성 과로와 급성 과로가 겹쳐 과로사로 이어진 것이 아닌지 추정되는 대목”이라고 했다.
정효원씨 아버지 제공

효원씨는 키 180cm, 몸무게 78kg으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꾸준히 헬스장에 다녔고 PT도 받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인천점으로 옮긴 뒤부터 말씨가 급격히 줄었다고 정씨는 전했다. 여자친구에게는 “하루 한 끼도 못 먹었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정씨는 효원씨가 조만간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수줍게 말해오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소개해줄 날만 기다렸는데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시키더라고….” 정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아들이 품고 있던 꿈을 들을 수 있었다. 효원씨는 내년에 여자친구와 결혼을 올리고 함께 가게를 열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런베뮤에서 1년 정도 더 일하며 배울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회사 숙소에서 멈췄다.

정씨는 회사 측 태도가 조문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당시 효원씨의 장례식장에 찾아왔던 런베뮤 측의 한 임원은 정씨에게 “효원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착실하고 일 열심히 한다고 소문이 나 있어 도산점에 있을 때부터 눈여겨 봤다”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했다고 한다.

정씨는 효원씨의 사촌이 공인노무사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회사 측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우리 조카(공인노무사)를 사람들한테 소개했어요. 근데 그날 밤에 제 조카한테 회사 측에서 문자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직원들 괴롭히지 말라고요. 그때부터 (회사 측과) 연락이 끊겼어요.”

LBM은 효원씨의 사망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27일 밤늦게 정씨의 조카에게 연락했다. “장례식장 이후로 지금까지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없었다가 어젯밤 11시30분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대요. 저랑 통화하고 싶다고요.” 정씨는 회사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씨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아들의 산재가 인정되는 것. “우리 아들이 열심히 일하다 이렇게 된 게, 그게 헛되지 않았다는 걸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LBM은 28일 발표한 ‘회사 공식 입장문’에서 사망 전 일주일 간 약 80시간 근무했다는 유족 측의 주장에 대해 “런베뮤 직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3.5시간”이라고 반박했다.

LBM은 “해당 기간에 매장오픈을 앞두고 바쁜 상황에서 본사가 파악하고 있지 못한 연장근로가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당사가 파악한 고인의 근무기간동안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이다. 주 80시간까지 연장근무가 이루어졌다는 유족들의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LBM 측은 “추후 노동청 등 조사가 나오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다”라며 “동일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전직원 근태관리 기록 의무화 등 내부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전 직원 대상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