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어요.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빠는 천국에 갔지만 그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랍니다. 앞으로 진행될 민형사 재판을 통해 음악을 하는 이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리허설 중 무대장치 사고로 중상을 입고 투병하던 성악가 고(故) 안영재(30)씨가 지난 21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친 뒤 사흘이 지난 27일 그의 세살아래 여동생 안은미(익명)씨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슬픔을 억누른 채 그러나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무대사고로 하반신마비된 20대 성악가
은미씨는 “오빠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난 장남이자 장손이었다. 항상 나를 챙겨주는 다정한 오빠였고 웃을때 보조개가 참 이뻤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해 인천예고와 상명대학교 성악과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테너 중에서도 유난히 깊고 단단한 울림을 지닌, 힘 있는 목소리의 성악가였다. 상명대학교를 2020년에 졸업한 그는 유럽 유학을 목표로 어학원을 다니며, 무대 경험과 실력을 쌓기 위해 다양한 공연에 참여했다. 2023년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오페라 ‘마술피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공연을 하루 앞두고 참변을 당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퇴장하던 중 천장에서 300kg의 무대장치가 하강하며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은씨는 “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오빠는 고통을 참은 채 다음 날 공연에 올랐다 ‘리허설을 수십 번 해도 본 무대에 서야만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공연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오빠는 무대에 서는 걸 정말 사랑했다”고 회상했다.
공연을 마친 다음날, 구토와 어지러움증으로 병원에 실려간 안씨는 ‘외상에 의한 척수 손상(경추 3번부터 6번까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전신 마비 증상으로 보행이 불가능해진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성악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발성과 호흡 능력마저 잃어 노래 한 소절을 부르기도 힘들었다.
더욱이 프리랜서 신분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안씨는 억대에 달하는 치료비를 홀로 감당하며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이어가는 한편, 재활에 최선을 다했다.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시련 속에서도 그가 끝까지 붙든 것은 신앙이었다.
“선생님 건강하게 돌아올게요” 마지막 인사
안씨는 인천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 브니엘 찬양팀의 테너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교회 오빠’였다. 사고 소식을 들은 찬양팀은 테너 파트가 공석이 되었음에도 다른 솔리스트를 세우지 않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의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비워진 자리를 통해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단원들의 마음이었다. 안씨 역시 힘든 재활과 치료의 시간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잃지 않았다
브니엘 찬양대 지휘자 윤용운(63) 집사는 “합창단 모든 단원과 온 교회 성도가 영재를 위해 함께 중보 기도하며 그의 자리를 지켰다”며 “그가 다시 돌아와 무대에 서서 찬양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고 후 복근이 약해져 발성이 어려워진 현실 앞에서 안 씨는 큰 좌절을 겪었다. 그때 윤 집사는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숨으로 찬양을 이어가라. 호흡이 끊기지 않으면 소망도 끊기지 않는다”고 격려했다. 몇 달 뒤, 안 씨가 휠체어를 타고 찬양대로 돌아왔을 때, 단원들은 그가 앉은 채로 다시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환호와 눈물로 그를 맞이했다.
안씨는 지난해 8월 교회 ‘감사챌린지’에 출연해 이렇게 간증했다.
“재활을 시작하면 얼마나 돌아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재활을 시작했고 정말 죽을힘을 다해 재활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살면서 잊고 지냈던 말씀을 듣기 시작했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찬양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주 조금이지만 기적과도 같이 몸이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재활에 성공해서 제가 꼭 다시 일어나서 찬양하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달 윤 집사를 찾아와 “다시 한 달 간 치료 받고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떠난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영재는 참 성실한 친구였어요. 믿음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늘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깊었죠. 세종문화회관과 진행 중인 소송 상황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하곤 했는데 ‘제 잘못으로 이야기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라며 마음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 전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면서도 ‘꼭 돌아와서 다시 찬양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영재가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껏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은 여전히 달라진게 없다
인천주안장로교회 브니엘 합창단 베이스 솔리스트이자, 광명시립합창단에서 활동 중인 고대현(48) 집사는 “같은 성악인으로서 또 선배로서 제대로 된 제도를 마련하지 못해 영재를 이런 일로 잃게 된 건 아닐까 하는 큰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고 집사도 젊은 시절 자신 또한 무대에서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에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였어요. 더 많이 배우고,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하던 신입시절이었죠. 창동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며 미리 연습하던 중, 무대 거리가 짧은 줄 모르고 그만 떨어졌습니다. 꽤 높은 곳이었는데 다행히 냉장고 두 대를 포개 놓은 크기의 스피커 사이에 끼어 목숨을 건졌죠. 몇 걸음만 더 갔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영재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개인이 떠안고, 병원비조차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하다고 했다. 이 같은 악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은 “예술인 고용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며 “성악가의 경우 단장이 공연을 기획한 오페라단이나 제작자와 하청 계약을 맺고, 프리랜서 성악가들이 단기·구두계약 형태로 참여하는 관행이 여전히 일반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단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4대 보험 등 최소한의 안전망에서도 배제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 집사는 “사고가 나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라며 “지금도 후배들이 어디선가 같은 사고를 당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재 역시 사고 당시 민간 합창단 단장과 구두계약을 맺은 상태라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고, 사망 전까지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가며 그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고 집사는 2008년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되는 아픔을 직접 겪은 당사자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오페라의 전문화와 늘어나는 공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창단된 전문 합창단이었지만, 2008년 예산 문제와 ‘합창단이 오페라단 규정상 직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체됐다. 당시 단원들은 월 70만원 안팎의 급여와 소액의 수당만을 받으며 공연했으나 4대 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했다.
그는 “그때도 선배들이 끊임없이 4대 보험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당시엔 어려서 그 중요성을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얼마나 큰 문제인지 깨달았고 이번 영재의 일을 겪으며 더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우리 선배들과 내가, 후배들을 위해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일부 시립합창단이나 국립합창단의 경우 4대 보험이 보장되지만, 그 무대에 서기까지 경력을 쌓아야 하는 젊은 성악가들은 여전히 제도권 보호 밖에서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영재의 죽음 헛되지 않게 “목소리 낼 것”
지난 21일 안씨는 오전 병원 진료를 마친 뒤 잠시 낮잠에 들었다가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가족이 발견해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장례식장에는 소식을 들은 많은 동료와 친구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안씨의 가족들은 현재 민형사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곧 1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법원은 안씨에게 신체 감정을 명령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절차가 멈춰 선 상태다.
안씨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의 안전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문화연대와 블랙리스트 이후는 공동논평을 통해 “고 안영재 성악가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예술인을 제도 밖으로 내몬 한국 사회의 구조적 실패”라며 “정부와 서울시,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고 실질적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2012년 산재보험이 예술인에게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인들이 제도 밖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예술인이 더 이상 죽음으로 존재를 증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와 정부는 고 안영재 성악가의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고, 공공 공연장의 안전관리 및 피해 보상 체계를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24일에는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 전문가 네트워크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안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공연예술인 산재 대책을 촉구했다.
성동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윤 집사는 “우리나라의 공연 역사와 음악계의 역사가 아직 짧다 보니 서유럽처럼 오래된 선진 시스템을 단번에 따라가긴 어렵지만, 이제 우리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젊은 예술가들이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공연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가가 없으면 공연장이 존재할 수 없고, 공연장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며 “제2의 영재가 나오지 않도록 기성세대 음악인이자 어른으로서 다음세대들이 더 안전하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터전이 될 수있도록, 영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며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은미씨는 천국에 있는 오빠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오빠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껏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찬양 많이 불러. 이제는 푹 쉬고, 편히 잠들길 바라. 나중에 천국에서 꼭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 억울한 일은 우리가 끝까지 대신 싸워줄게. 하늘에서 지켜보며 응원해줘. 사랑해.”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