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위태로운 4살 아이의 119 응급의료 요청을 거부해 ‘응급실 뺑뺑이’를 돌게 하거나, 진료기록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당시 이 아이는 결국 20㎞ 떨어진 다른 병원까지 가서 투병하다가 다섯 달 만에 사망했다.
울산지법 형사9부(김언지 판사)는 27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 A씨(34)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응급실 당직 근무 중이던 2019년 10월 새벽, 의식이 없던 김모(4)군을 태운 119구급차의 응급치료 요청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119구급대원들은 가장 가까운 병원이자 보름 전쯤 김군이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았던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소아응급실로 연락했으나 A씨는 이미 심폐소생 중인 응급환자가 있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사실상 치료를 거부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당시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에는 김군의 치료를 기피할 만큼 위중한 환자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군을 태운 구급차는 결국 20㎞가량 떨어진 부산의 다른 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김군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연명 치료를 받다가 이듬해 3월 사망했다.
재판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 요청을 기피해 결과적으로 심정지 상태였던 피해자가 양산부산대병원 도착을 5분여 남겨두고 신속한 응급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됐다”며 “다만 당시 응급실이 포화 상태여서 업무 강도가 상당히 높았던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재판에선 앞서 김군에게 편도선 제거술 후 출혈이 보이자 환부를 광범위하게 소작(燒灼·지짐술)하고도 일반 환자처럼 퇴원시키고, 제대로 의무기록에 남기지 않은 양산부산대병원 의사 B씨(41)도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또 김군이 양산부산대병원 퇴원 후 증상이 악화해 찾아가게 된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대리 당직을 서면서 김군을 직접 치료하지 않고 119구급차에 인계한 후 진료기록을 곧바로 넘겨주지 않은 의사 C씨(45)에게도 역시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B씨와 C씨에 대해 업무상 치사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의료법 위반 혐의만 받아들였다.
의무기록을 제때 작성하지 않거나 진료기록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혐의만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기록을 보면 피고인들에게 크고 작은 업무상 잘못은 있었으나 피해 아동 사망과 인과관계가 명백히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지만, 피고인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의사 업무 관리를 소홀히 한 부산대병원 측에는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김군의 어머니는 “진료기록 조작에 대해 유죄판결을 했고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아들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한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가 항소할 거라고 믿고, 항소심에서는 부디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